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5 18:13:18
안녕하세요?
어느날 예고없이 전세계적으로 찾아온 코로나 19~.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도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이로인해 많은 인명피해도 발생을 하고 모든 국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초래 할 뿐만아니라, 경제활동도 위축되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어요. 특히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하루하루 일터에 다니는 서민들에게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마저 일거리가 줄어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는 실정이죠.
우리는 현재 국민모두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나 국민 각 개인이 건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지만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있는 이웃에게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제 개인 SNS를 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보람된 일을 하고 있어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정보화 시대에 모두들 개인 SNS를 하고 있는데 아주 간단한 기부방법으로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느날 눈에 들어온 사연하나.
그들에겐 너무잔인한 코로나19!
늘 밤샘작업을 나가시는 엄마와 오빠와 함께 사는 11살 유진(가명). 이혼한 아빠가 양육비를 주지않아서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야간일을 나가며 낮에는 잠을 자야 해요.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일거리가 줄어들어 생계마져 어려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유진이는 그런줄도 모르고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마냥좋아 한대요.
한숨만 늘어가는 엄마. 유진이와 오빠, 엄마, 이 세 식구의 소원은 지극히 평범한 모두 함께 모여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애처로운 사연을 보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다가 제가 실천한 작지만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
그게 뭐냐구요?
바로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글을 작성할때나 웹서핑을 통해 나도모르게 쉽게생기는 해피빈 콩! 조금씩 쌓여가는 해피빈콩! 이게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기부방법이에요.
해피빈 콩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소멸되기전에 기부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요~!
제가 모바일에서 발견한 해피빈 기부콩!
그동안 하나하나쌓인 기부콩이 8,900원이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이렇게 어려운 가정들에게 바로 기부를 했어요. 이렇게 모은 기부금액이 벌써 5백여만원이 되고있었네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 선행을 베풀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기부를 하고 나니 유진이네 처럼어려운 이웃이 조금이나마 생활에 보템이되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해피빈 콩 기부를 통해 어려운 가정을 지원한다면, 각 가정에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지않을까요?. 코로나19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 이 위기를 넘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실천으로 코로나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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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8:01:37
춘천엔 세탁소가 150여 곳 넘게 있는데 협회에 가입한 업소는 43개 정도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 코로나 19 위기 방역대처 일환으로 자원봉사 센터에서 마스크 제작을 진행 중이었는데 세탁협회 지부장이라며 우리도 마스크 제작에 동참케 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반가움에 다음 날 가게로 직접 찾아 가 뵈었는데 가게는 낡은데다 좁고 열악해서 앉을 공간도 없어 서서 얘기하면서 차마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마스크제작 함께해주시겠다는 말씀만 감사히 받겠다면서 자원봉사자와 각 단체의 협조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저희들끼리 만들 수 있다고 정중히 말씀 드렸더니, ‘그건 아니다 내가 확인 해 보니 자기 집에 재봉틀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스크 제작에 참여한 봉사자 분들이 많다는데 재봉틀로 먹고사는 우리가 이 기회에 봉사하지 않으면 언제 봉사 하겠냐‘ 며 2,000장 정도의 재료를 요청해서 드렸다. 드리면서 지부장님 혼자서 가게 일도 하고 본업의 일도 바쁘니 세탁업소 알려주시면 우리가 나눠주고 다 되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다 받으셨다.
마스크제작은 2주 만에 완성해서 가져왔는데, 15개 업체가 참여했고 일과 후 밤늦게 만들었다는데 깔끔한 재봉에 다림질까지 해서 다른 봉사자분들이 만든 것보다 나을 뿐 아니라 구매상품 못지않게 좋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잘 만들어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혼자 먹고살기 바빴는데 재봉틀로 남을 돕고, 받는 분이 좋아 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너무 큰 보람과 행복을 맛봤다며 오히려 동참토록 해준 센터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 참여했던 협회 업소가 자원봉사 단체 등록을 했고 지금은 행정복지센터와 협조하여 거동이 불편한 홀몸어르신 가정의 이불세탁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전화 드렸더니 봉사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함께 사는 이웃 공동체와 같이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봉사 할 일 있음 저희에게 먼저 연락 주라고 말하는 전화 말속 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121
2020-10-15 17:55:37
진주시장애인체육회는 진주시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오랜 염원으로 민선7기 들어서면서

지난 4월에 출범을 하였습니다.

저는 진주시장애인체육회 출범과 함께 사무국장이란 중책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비장애인의 한 사람으로 장애인 체육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15개 장애유형에 따른 장애인과의 소통은 비장애인으로서 감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니 장애를 가진 분들께서도 마음을 열어 제가 건넨 손길을 잡아 주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장애인들에겐 유일한 낙이었는데, 코로나19는 세상과 소통하는 길마저 막아 버렸습니다. 특히 취약계층인 장애인들에게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진주시장애인체육회는 찾아가는 생활체육서비스 중단에 따른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선제적 방안으로 방역봉사단을 만들어 장애인 시설 및 경로당에 방역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방역활동을 시작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진주시장애인체육회 직원 및 임원진들이 자발적 성금을 모금하여 진주시에 오백만원을 기탁 하였으며 한 업체에서는 장애인 시설에 보급해 달라며 손소독제를 진주시장애인체육회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 봉사단체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에게 사랑의 한 끼 도시락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진주시장애인체육회의 선제적 방역 봉사활동이 언론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후원을 해주겠다는 업체들이 이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면역력이 취약한 장애인들을 위해 면역력 증강식품을 나눠드리기도 하고 중학교 봉사단체인 나눔피아 학생들은 마스크 끈을 직접 만들어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진주시장애인체육회 직원, 지도자 그리고 장애인체육회 봉사단으로 구성된 방역 봉사단은 5차에 걸쳐 장애인 시설 및 취약계층시설에 대한 방역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코로나19로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에 닥친 큰 위기였던 코로나19는 진주시장애인체육회에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 선물이 되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3
2020-10-15 17:54:37
2010년부터 박인천 Road 음식문화거리 번영회장을 해오다 2020년 3월 25년 운영해 온
식당을 옆으로 용감하게 옮기고, 4월 9일 충장동 4통장이 되었네요.
이웃이 있는 행복 동구란 문구를 떠올리며 제딴엔 참 거창한 파란꿈이 있었네요.
그나마 광주는 코로나가 좀 덜해서 견딜만 했어요.
6월에 동네에 화재가 있어 동직원들하고 뛰어다니고 일복많은 통장이라
오피스텔 두동도 입주해서 270세대 사후 전입신고 확인하고 그나마 또 견뎠어요.
그런데...
저희 동네는 점심시간 2~3천명이 쏟아지는 손님을 20년~30년 받아준 당사가 않되
임대로 인한 이동이 하나도 없는 성실하고 손맛있는 노포골목 입니다.
동네 주위에 금융권, 백화점, 콜센터 회사들이 병풍처럼 있고,
노인 보호구역이 가로지르고 원래부터 다단계 사무실이 7~8군데 있고,
대형 콜라텍이 있고, 어르신 아지트인 지하 다방이 10군데 있는데
점점 주위에 확진자 동선이 뜨기 시작 했어요.
그 많던 손님들이 않보이고 마치 바닷물이 갈라진 홍해처럼 세블럭 넘어까지 보이며
거리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여름이 시작 되었답니다.
광주가 왜 그래란 전화만 오고 매출이 반의박까지 떨어진 어느날 가게를 이제 인수한
25살 신참 사장이 "사장님 이제 우리 블록까지 확진자 동선이 뜨면 문 닫아야 하나요?"
하는데 막막 하기도 하고, 내가 뭐하러 이 시기에 나서서 통장이네 뭐네 했을까
입을 찢고 싶다는 생각과 "나도 힘들다 이놈아 표현은 안하지만"
별의별 생각이 떠오를 때 그래 동에가서 머리 한 번 맞대보자
잔소리쟁이 여자 동장님한테 달려가 봤어요,
착한 행정계장이랑 혼기 꽉찬 총무님에게 말해서
분무기, 소독약, 물티슈 등을 챙겨주시 더라구요.
그러면서
통장은 반 공무원이여(동갑이라 막할 때 있음 ㅋ) 그 동네 방재단도 구성하고
연세드신 노포들이 방문자 기록부랑 여러 가지 모를테니 같이 뛰어다니게 해 주더라구여
그날 저녁 총무님은 퇴근길에 나머지 소독약이랑 낑낑거리고 갖다주고
첨엔 업주들도 "뭐 효과 있겠어" 시큰둥하고 혼자 다니니 덮고 마스크도 꼈는데
세시간씩 돌아다니다 상황이 더 안좋아져 주민들에게 방재단 동참을 권했어요
말이 그렇지, 월세도 못내는 가장들한테 동네 봉사 하란말 참 힘들대요.
그래도 넷째를 낳은 중국집 사장과 25살 신참이 동참해줘 같이 돌아 다녔어요.
첨엔 시큰둥했던 주민들도 상황이 안좋아져 환영해 주고 구석 구석 소독해 달라
해주셔 참 뿌듯 했어요.
소독하다 넷째 백일사진 찍으러 가는 뒷모습 보고 "자장면 먹으로 갈게"란 위안 밖엔 없었네요.
동네에 갑자기 영감님 한 분이 꽁초를 주워 피시고 마스크도 안쓴채 하루종일 배회
하시더니 주민이 되버려 말로만 듣던 슈퍼 전파자일까 다른분들 걱정이 더 커져가서
또 동에 뛰어 갔어요.
강제력이 없어 어떻게 못한다 하지만 우리 동장님 삼복더위에 다단계 사무실 돌아
다니고 다방 돌아다니며 챙기시더니 금남지구대에 가서 신원파악 요청하고 119
구급대와서 체온 재고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주의 드리고 때맞춰 태풍도 불고
수해도 입고 참 가지가지 하드라구요.
일주일 한번씩 소독을 하던 어느 다음 날 자고 일어 났는데 손등 바닥에서 눈이
내리더라구요.
세월이 지나니 각질이 생가나 싶었어요 그런데 계속 벗겨 지대요.
비비면 날라가는 ㅋㅋ 같이 방역하던 25살 총각이 "사장님 손바닥 피부가 막
벗겨져요 영양 부족인가 봐요" 하드라구요 "어? 나돈데" 하고 행정계장한테
전화해보니 자기도 다른 곳에 봉사갔다 그랬다구 보호 장비가 없어서 그런거니
비닐 장갑을 꼭 끼라고 알려주대요.
젠장! 면장갑 하나끼고 다녔는데 소독약을 희석 했지만 흠뻑 젖어서 아주곱게
벗겨졌더 라구요. "미안하다 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다 핸드크림 자주 발라라 말밖엔" 딱히...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돌아다닌 다음날 골목가운데 공원에 확진자 동선이 뜨고
폐쇄가 됐어요. 다행히 식당은 아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정말 그곳 주위 업소들을
중점적으로 소독했는데 뭔일 이라니 하며,
"우리 예지력이 있나"하며 웃기도 하고 한편으론 "워매 진즉 알려주지 겁나 놀랬네"
했네요.
초보 통장이라 알도 모르면서 들이대 들이대 하다 한건 한거겠죠 ^^
그날 생각하면 정말 우리 멤버들한테 미안하고 감사해요.
10.12. 거리두기 1단계 완화 조치가 발표되자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아직 회식은 안하는 분위기고 그나마 맛있는 점심을 드시러 나와 주셨어요
오피스룩에 하얀 마스크, 하이힐 - 패션의 트렌드가 되고 결재하듯 당연히
명부를 적어주시고 영양 크림처럼 소독약을 비비시는 모습들이 너무 감동입니다.
배달도 시작해서 "배달의 민족 주문~" 소리도 나고 포스를 찍어 매출을 확인하고
아직은 70% 정도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오늘도 분무기를 들고 나가렵니다.
공무원이라면 약간은 부정적인 입장이 떠오르는 대한민국 이지만 통장이라는 반공무원이
되다보니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더 큰 봉사를 위해 시범 케이스인 충장동 주민자치회 회원도 신청해서 뽑혔구요.
아직은 초보라 다듬어지지 않고 좌충우돌 하지만 우리 힘든 시기에 통장 잘
뽑았다란 얘기들어 너무 좋았고, 따라와준 우리 상가 번영 회원들이 참 애잔해서
올립니다.
주민센터는 위기때 지자체나 정부에 막무가내로 요구 하는걸 현명하게 효과적이게
갈길을 알려 주었고, 주민들은 잘 따르고 솔선수범 해 주어 우리 골목에선 더
이상의 확진자 동선이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어요
그동안 노력해주신 행정안전부 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초짜 통장 (반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행정안전부, 시청, 구청, 주민센터 그리고 주민들의 연결고리와 소통이 앞으로
코로나 극복에 제일 중요한거 같아 올립니다.
고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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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50:25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벌서 오늘 "하남 사랑의 콜센터" 운영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 자원봉사 단체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라며 생각했던 하남 사랑의 콜센터 운영?
우리는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사무실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있을때
자원봉사하는 회원 중에 상담 자격증을 가진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으나
3개월간 콜센터 장소 마련과 운영비 마련하기가 어려울때
소식을 듣고 콜센터 장소 후원과 운영 비용을 만들 수 있는 하남시도시공사 공모사업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되어
공모전에 참가하여 선정되 콜센터를 운영하게된 사연입니다.
장소는 하남시 황산에 샘치과 원장님이 병원 한쪽에 공간을 내어주시고, 비용은 공모사업으로 마련하고
운영과 홍보는 하남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김춘자 회장) 소속단체에서 28명의 회장이 2인 1조로 월, 수, 금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 상담 내용은 코로나19로 인한 건강상담, 노인상담, 청소년상담, 진로진학상담을 하였습니다.
6월15일 개소하여 10월15일 까지 매주 3회식 운영된 코로나19 극복 하남사랑의콜센터 운영 자원봉사는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 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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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47:57
|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글로벌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개발협력 대표기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KOICA)입니다.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는 벌써 10개월간 지속되며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전 세계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는 코이카에게 코로나19는 사업전반, 조직운영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몰고왔습니다. 특히 44개국에 100여명의 직원과 1500명에 가까운 봉사단원 등 우리 국민을 파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초기부터 그 위험성을 주목하고 긴밀하게 움직여 나갔습니다.

| 코이카, 코로나 펜데믹과 락다운(Lock-down)으로 위기를 맞다

작년 말 시작된 코로나19는 폭발적인 전파력을 보이며 순식간에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중남미,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2월 중순, 신천지 사태로 인해 한국의 확진자가 급증할 때까지만 해도, 해외사무소에 있는 인력들이 한국에 있는 동료와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해주 었습니다. 그러나, 3월 전 세계 확진자가 약 20만 명으로 늘어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펜데믹 선언을 하게 되면서부터 개도국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코이카는 인력을 파견한 5개국(태국, 베트남, 네팔 등)으로 확진자 발생 국가가 확대되던 1월 28일, 안전대책위원회를 가동하였습니다. 파견국가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나갔으며, WHO의 펜데믹 선언 즉시 44개국 전체 파견인력의 본국 귀국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각국의 지역이동금지 및 공항 폐쇄 조치로 인하여 파견인력의 한국 귀국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개도국에 파견된 봉사단원들은 수도 만이 아니라 개도국 지방 곳곳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고, 갑작스런 개도국내 지방간 이동 금지령, 국경 봉쇄령 등은 우리 봉사단원들과 교민들의 발을 묶어버리는 상황까지 되어버렸습니다.

구체 사례로, 페루는 중남미 전역으로 코로나가 확산됨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갑작스럽게 고립된 봉사단원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협뿐만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혐오 공격이 증가하면서 안전에 크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코이카의 파견인력 긴급이송 계획도 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상상황 속에서 코이카 페루사무소는 외교부, 주페루대사관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페루의 군, 경찰, 외교 루트를 전방위로 활용해 이동봉쇄 조치 해제와 이동에 관한 경찰지원을 요청, 버스 7대를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피우라, 따끄나 등 수도에서 무려 1천 킬로가 넘는 지역을 1박 2일 동안 버스로 달리며, 단원 한 명 한 명씩 픽업, 수도 리마에 안전하게 후송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지의 열악한 통신 환경 속에서 마치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현지의 도움을 얻어 코이카 단원들은 물론 우리 국민 20명도 추가로 이송했습니다.

페루와 마찬가지로 현지 이동이 락다운된 카메룬에서도 단원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불확실성과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지방단원까지 모두 수도에 어렵게 집결시키고, 수도를 출발하는 항공권을 어렵게 확보해놓았으나, 카메룬 정부의 갑작스러운 육해동 모든 국경 봉쇄조치에 사무소는 단원들을 귀국시킬 수단으로 전세기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이카 사무소로서 전세기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카메룬 대사관과 협력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살림살이도 챙기지 못한 채 살던 지역을 떠나 수도에 모인 단원들의 심리적 안정, 신체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단원들은 사무소에서 도보 10분 이내, 차량 3분 이내 거리의 숙소에 머물도록 하고, 식료품은 단원들의 신청을 받아 사무소 직원이 대신 장을 봐주었으며, 단원들에게 읽을 책을 빌려주고 반납 시에는 소독하여 사무소 서가에 진열하였습니다. 이렇게 장기화에 대비하는 가운데, 사무소는 임시항공편(전세기) 확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카메룬은 단원과 교민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임시항공편을 위한 인원 확보를 위해 우리처럼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 일본 자이카(JICA)와 협조키로 하였습니다. 인원 확보는 되었지만 전세기로 활용할 에티오피아 대형 항공기의 도쿄 착륙허가 발급(인천을 거쳐 도쿄까지 가는 경로였으므로)받고, 정기항공권이 아님에 따라 현금이나 카드결제가 아닌 뉴욕 에티오피아항공사 계좌로 항공권 구매비용 송금이 필요한데 카메룬 정부가 모든 국제송금을 막는 등 여러 가지 장애를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모든 사무소, 대사관 직원이 밤낮없이 뛰어다닌 끝에 무사히 우리 단원과 교민, 그리고 일본 단원과 그 가족 등 96명이 모두 안전하게 서울, 도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글로벌 협력 모델을 제시하다

과거에 있었던 사스(SARS), 에볼라(EBOLA) 같은 감염병에서 선진국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선진국에서도 심각하게 타격을 입으면서 개발도상국과의 협력고리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자국 중심주의도 팽배해졌었습니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위기가 닥치면 항상 아래로부터 붕괴가 시작됩니다. 소득계층의 최하위 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빈곤국가와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컸습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감염병으로 죽으나, 굻어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고 슬프게 말합니다. 코이카는 코로나19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개발도상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식량, 보건, 의료 지원에 중심을 두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중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례 1) 코이카, 코로나19 위기 속 코이카가 필리핀에 구축한 현지 유통망 활용해 식량 지원

필리핀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역 봉쇄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도시빈민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생활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식료품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닐라에만 약 65만 가구가 빈민 가정으로 필리핀 정부가 긴급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체의 25%에 불가해 많은 인원들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코이카는 단순 지원 뿐아니라 기존에 코이카가 구축해준 농업 인프라를 활용해 코로나19 극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코이카는 10년 전부터 농촌개발사업으로 필리핀 파나이섬에 작물재배, 미곡종합처리장, 농산물 유통시설 등 인프라를 지원하고, 현지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해왔습니다. 이 결과, 주요 작물 평균 생산율이 100% 증가하고 농가 연평균 소득이 74% 높아지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또한 농민협동조합과 미곡종합처리장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시 빈민 3만 3천여 가구, 17만 명에게 쌀 200톤의 식량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지원은 코이카의 도움으로 필리핀에서 자체 생산한 쌀을 필리핀 내에 도시 빈민을 위해 직접 공급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글로벌 협력 모델을 보여준 것으로써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롤란도 바우티스타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 장관은 “한국정부의 미곡 긴급지원은 17만여 명의 도시빈민을 포함한 취약계층들의 생존을 돕는데 긴요하게 활용될 것입니다”며 “코로나19가 경제사회를 황폐화시키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한국 정부와 코이카, 한국민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사례2) 코이카가 개발도상국에 지원한 병원, 코로나19 대응 일선에

또한 코이카는 직접적으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개도국의 의료 역량 개발에도 힘써 왔습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개발도상국 일부는 전문 의료진과 시설이 현저하게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코이카는 기존에 지원해 준 의료시설을 활용해 개도국 현지코로나19 대응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코이카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건립해 최근까지 관리, 지원하고 있는 병원은 110여 개 곳입니다. 이 가운데 네팔, 페루, 팔레스타인 등에 건립한 15개의 의료시설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어, 코로나19 긴급 대응에 활용되었습니다. 아울러 이들 병원에는 추가적으로 진단키트와 의료장비, 의약품을 지원하여 힘을 보태었습니다. 집중치료시설과 산소공급장치, 격리 병동 등이 필요한 코로나19 특성상, 현대식 병원의 존재와 의약품 지원은 개발도상국에서 사막의 우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의료시설뿐만이 아니라 코이카가 ‘글로벌보건안보구상’에 따라 양성한 캄보디아와 가나, 우즈베키스탄 등 현지 역학조사관들이 감염병 저지에 큰 역할을 한 점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가나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코이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중급 현장역학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FETP) 프로그램을 졸업한 15명 중 14명은 현지의 감염병 역학조사에 투입돼 추적조사, 데이터 관리, 보건교육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 결과, 지난 6월 기준 약 2,750건의 사례추적을 통해 380여 건의 코로나19 감염 사례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네팔 누와꼿 군립병원 책임자인 라이 쿠마르 람 박사는“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의 때에 코이카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며 “네팔에 현대화된 의료시설을 지원해 준 코이카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 코이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준비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표준인 뉴노멀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실천도 필요합니다.

이미 닥친 코로나19의 극복,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감염병의 대처를 위한 우리의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에는 누구도 안전해지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정신의 구현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이슈를 △선진국의 문제 △개도국의 문제로 구분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2020년이 우리에게 일깨운 ‘새 천년’의 시대정신은 ‘모두, 함께’입니다. 그 중심에 ‘신뢰와 연대’가 놓여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뉴노멀의 핵심은 코로나19 극복이 어느 한 나라만 해결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자국주의 중심 사고에서 한발 나아가, 글로벌 상생과 조화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극복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코이카는 국제협력을 통해 지금까지 크나큰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K-방역과 코이카의 개발도상국 협력 사례를 통해 얻은 교훈을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을 통해 글로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코이카는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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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44:23
안녕하세요. 저희는 장애인의 건강증진과 장애인체육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진주시장애인체육회”입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마스크를 벗고 활동하는 것은 머나먼 일이 되었고 갑갑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저희 장애인체육회는 코로나19가 확산이 되면서 모두 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그 속에서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장애인들에게 도음이 되고자 코로나19 예방활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예방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는 장애인들의 안전과 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직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수칙교육을 받았고 그 후 코로나19 예방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봉사단체에서 제공해준 도시락을 한 업체에서 기부한 마스크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인해 외출이 힘든 중증장애인과 소외계층에게 배달하였고 장애인들의 면역력 증가와 건강증진을 위해 장애인 관련 시설과 단체에 기부물품도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업체에서 기부해준 마스크 1만장을 장애인단체 및 취약계층에 전달하였고 추석 전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시민들이 많이 찾는 야외장소들을 방문해 마스크와 마스크 끈 배부도 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인 복지시설 및 장애인체육 수업 활동 사업장 등에 방역봉사활동을 5차에 걸쳐 해오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방역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예정입니다.

방역봉사활동으로 인하여 조금이나마 장애인들과 시민들의 안전에 보탬이 된 것 같아서 뜻 깊었고 방역봉사활동 와중에 중학생들로 구성된 나눔피아 봉사단 학생들이 마스크 목걸이를 직접 만들어서 후원해주었는데 아이 어른 할거 없이 모두가 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 속에서 따뜻함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하여 모두 힘든시기이지만 하루빨리 종식되어 마스크 없이도 밖을 나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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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44:21
반갑습니다. 저는 전기기술사 학원에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40대 '아재'입니다^^; 저희 학원은 전기기술사 자격증을 공부하는 수강생도 남자분들이 대부분이고, 원장님서부터 행정실에 근무하는 직원과 강사 10명이 모두 남자인, 마치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아주 딱딱하고 건조한 분위기에요.
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이 가장 어른이신데, 두 분다 경상도 출신에 하루에 다섯마디 말씀하셨으면, 그날 아주 많이 말씀하신 것일 만큼 무뚝뚝하시죠. 그리고 원장님은 군에서도 10년 넘게 장기복무 하신 경력도 있으셔서 사무실에서 '군기'를 자주 잡으시기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로 인해 학원도 문을 닫아야했고, 문은 닫았지만 업무는 계속 진행이 되어야하니 학원 직원 전체가 재택근무 체제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재택근무를 하려면 카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업무와 관련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이 카톡을 전혀 해보신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ㅠㅠ 그래서 저를 비롯해 젊은 직원들이 글자 입력서부터 하나하나 깨알같은 도제식 교육에 나서 겨우 단톡방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원장님과 사무국장님께 이모티콘 입력하는 법은 나중에 알려드렸는데, 이 두분이 글쎄 이모티콘 올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시더라구요 ㅋㅋㅋㅋ
급기야 카톡에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에도 손을 대시기 시작하셔서 남자들만 모여있는 전기기술사 학원 단톡방에 ㅋㅋㅋ와 ㅎㅎㅎ가 마구 올라오는
귀여운 '사랑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ㅋㅋㅋㅋ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재택근무 덕분에, 군대 내무반 같던 저희 행정실에 훈풍이 찾아온 셈이죠^^
재택근무가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고, 저희 학원의 수익에도 영향이 있었지만, 분위기 만큼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 되면서, 심적으로는 지치고 짜증도 나고 힘이 들긴하지만 단톡방에서 느낀 소소한 즐거움 덕분에 하루하루 잘 극복해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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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26:01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들이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교류도 적어지고 경제자거인 피해로 인해 지쳐있는 사람들도 많은 현실입니다.
감정을 느끼고 요리를 만들고 소통하는 MAKE에서 정서적으로 메말라있고
지쳐있는 분들을 위해 요리를 이용한 소통요리를 재능기부하고자
MAKE를 필요로 하는 단체나 회사를 찾아봤습니다.
저희 소통요리공간 MAKE를 원하시는 곳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코웨이 서산 3160 사업국과 연천의 꿈자락, 서산봉우리봉사단,
청양의 도담도담육아동아리에서 재능기부를 하였습니다.
서산에 위치한 코웨이 3160 사업국은 힘든 시기에 직원분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사업국장님이 직접 신청해 주셨으며 맛있고 예쁜 고구마빵을
함께 만들고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직원분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간의 소통을 해 주시고 눈물로 무거웠던 마음들도 내려 놓으시고
더불어 저희 MAKE 선생님들도 마음이 따뜻해 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소통의 시간 후 저희에게 감사하다며 꽃다발을 전해주시는데 그것에 또 한번
감동이었으며 그리고 후에 코웨이 사무국에서 많은 피드백의 글들이 저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내용들을 보면 '코로나로 인해 지쳐있는 식구들에게 요리로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주고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라는 글도 있었으며 '잠깐 동안 한번도 열지 않았던 팀원들과 소통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라는 글 등..
여러 가지 따뜻한 말들로 피드백을 해 주셔서 생각지도 못 한 글들에
저희 MAKE 소속 선생님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음이 고우신 분들이 모여 좋은 일 하시는
봉우리봉사단분들과 소통요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구마빵을 다같이 만들고 포스트코로나시대를 맞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힘든 부분들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친한 이들에게 털어 놓고 위로 받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소통의 시간이 지금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에
이런 귀한 시간들을 서로 만들어가고 서로 느낄 수 있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들도 들기도 했습니다.
봉우리봉사단의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후에 이곳에서도 따뜻한 피드백의
글들이 전해졌습니다.
'너무 복잡했던 마음, 위로 받고 싶은 마음, 다잡아 보고 싶은 마음을 강의 내내
채우셨다며 고맙습니다.' 라는 글도 있었으며
'요리하며 치유하는 귀한 시간 만들어 주신 MAKE팀에 감사합니다.'
라는 글도 피드백 해 주셔서 행복함을 느끼고 이 일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우리의 재능을 통해 코로나로 지쳐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수업들이었는데, 그 분들의 소통하는
모습들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더불어 MAKE 소속인 저희들도
같이 하나가 되어 소통하고 마음에 따뜻함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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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24:13
양수경 봉사자는 올해 70세이며, 춘천 시내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의 산골 사북면 오탄리에 살고 계신다.
평상시 외곽에 살면서도 봉사 활동에 관심이 있어 가끔 향우회 봉사단에서 연락이 오면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가하여 김장김치봉사, 연탄배달
봉사, 배식봉사 등 1년에 3~4회 당일치기 봉사에 참가했고 그 외 혼자서 봉사하는 일은 쉽지 않아, 집 앞 밭에서 수확한 채소, 고구마, 산채 그리고 정원에 있는 머루, 다래를 시내 불우노인에게 나눠 주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3월초 시내에 나왔다가 약국 앞에 마스크를 사기위해 주로 노인 분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뉴스에서 줄을 서도 마스크가 떨어져 못사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시절 양재 일을 했고 집에 재봉틀도 있어 마스크재료만 있으면 손수 만들어 어르신들께 나누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봉사 센터를 찾아오셨다고 했다.
마침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불우시설과 노약자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봉사자와 함께 마스크제작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센터방문을 감사드리면서 재료가 준비되면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더니 거리가 있으니 직접 오시겠다고 했고 준비된 날에 오셔서 내가 자주 못나오니 500개 분량을 달라고 해서 가져 가셨다.
이 수량은 센터에서 만드는 봉사자 수준으로 비교하면 250시간 분량의 많은 양이다.
그런데 1주일 만에 만들어 오셔서 깜작 놀라 같이 만드는 봉사자가 있냐고 여쭸더니 산속에 영감 말고 누가 있겠냐며 또 500장분을 가져가 1주일도 안되어 만들어오셨다.
나는 놀라고 믿기지 않아, 잠도 못주시면서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니냐고 걱정 섞어 물었더니, 마스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은 언제 잤는지 기억조차 없고 집안일은 아예 손 놓았음은 물론 영감 밥도 알아서 해결하라 하면서 재봉틀에서 살다시피 해 다 만들었더니 이젠 손도, 허리도 아파 더는 못 만들겠다면서도 아직도 만들게 많이 남았냐? 시며 걱정해주시는 모습에서 눈시울에 뜨거움 전해지며 천사의 모습을 보는 듯 느껴졌다.
‘예! 목표량 다 채웠고 남은 재료만 만들면 끝나니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양수경 봉사자분 덕분에 500명은 줄 안서도 됩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또 봉사기회 있으면 연락 주라면서 애써 웃으면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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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13:28
안녕하세요. 대구에 살고있는 쌍둥이네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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