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1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06 09:35:58
2019년 말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로 현재도 우리 모두의 일상은 변해가고 있으며,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1월 말 설 연휴를 앞두고 전 직원의 해외여행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에 연일 뉴스에서 우한발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는 있었지만, 설만 우리까지겠어? 별일 없을거야, 감염병 예방을 위한 행정절차일 뿐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작성했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는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천지 교회를 시작으로 바이러스는 대한민국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서울 구로콜센터 근무자 감염이 콜센터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며, 인천 및 경기 일대에 거주하는 근무자가 많아 지역사회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모든 콜센터는 고위험군 사업장으로 분류되어 우편고객센터 또한 더욱 강화 된 감염병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콜센터 업무 환경 상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어 직원 보호를 위한 근무환경 관리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우편고객센터 운영진은 비상연락망을 구축하여 상담사 출근 전 자가 건강체크 및 가족, 동거인 등의 건강상태를 매일 확인하고, 발열 등 몸에 이상이 있는 직원은 자택 대기 후 필요한 업무조치를 하였으며, 내.외부인의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방문자 기록관리, 외부 행사 참여자제, 주기적인 건물 자체 방역 실시 등에 대한 내용을 전 직원이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직원 간 밀첩접촉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격거리 확보 및 파티션 가림막을 설치하여 비말 감염을 예방하였으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임산부 재택근무를 우선 시행하였고, 콜센터 업무 특성 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 아니었음에도 신속히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여 점차 일반 상담사까지 재택근무를 확대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 가격이 치솟을 시기 혹여라도 마스크 미착용으로 인한 감염 발생을 우려하여 회사에서 직접 나서 직원용 마스크 수급을 위해 노력하며, 사회적 약자와 고위험군 사업장 근로자를 위해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사회 감염예방을 위해 노력하며 발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에 상담사들은 회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다시 한 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콜센터에 근무하는 상담사는 하루 5시간 가량을 감정노동을 하며 생활합니다. 감정노동은 그 어떤 중노동보다도 힘든 일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 됩니다. 콜센터의 힘든 근무 여건 속에서도 우편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템이 되고자 홀로 계신 어르신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 거주하시는 노인분들께 상담사가 일주일에 2~3회 연락드려 가족같은 마음으로 어르신의 안부를 여쭙고 혹여라도 어르신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 될 경우 관리센터로 연락드려 어르신을 돌봐주실 수 있도록 요청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인데, 처음 전화를 받으신 어르신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셔서 전화를 안 받으시거나 끊어버리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담사들이 진심을 다해 어르신을 대하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을 열어주시곤 하셨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코로나19로 모임과 이동을 자제하고 있는터라 어르신들이 가끔 나가시는 마실도 제대로 못 나가시고 댁에 계시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내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어르신들께 미약하지만 전화로나마 안부를 여쯥고,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마스크나 반찬용 김 등 조그만 선물을 보내드리면서 홀로 계신 어르신들께 위안이 될 수 있도록 힘든 여건속에서도 잊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는 상담사들을 보면서 바이러스로 인해 삭막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아직은 살만하구나' 하는 가슴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는 상담사들께 이 기회를 빌어서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편고객센터는 얼마 전 1년에 두 번 보내는 추석 성수기 기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평상시보다 많은 고객 문의가 접수되어 상담사들은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기 추석 성수기 기간까지 겹쳐 수많은 민원고객을 응대하고, 새로 시행되는 업무를 숙지하는 등 혼동스런 여건 속에서도 책임감 있게 끝까지 큰 민원없이 성수기를 마무리한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한 건물에서 동거동락하며 나 하나가 아닌 모두를 위해 서로 협조하고 상생하며 전 직원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우편고객센터는 단 1명의 코로나19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편고객센터 전 직원이 모두가 같이 행복한 우편고객센터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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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23:31:06
저는 올해 5월 군 생활을 만기로 전역한 전역자입니다.
저는 남들과 똑같은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제 전우와 함께 생활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제가 복무했던 곳에는 코호트 격리소로 지정되어 최소 인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전우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분대장이었던 제가 남은 전우를 이끌며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라며 다시 뭉칠 전우들을 기다리며 생활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은 급변하였습니다. 일과가 코로나 방역 위주와 코로나 물품 공급, 체온 측정, 식사 및 간식제공 등 코로나방역으로 시작하고 코로나 방역으로 끝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몸과 맘이 많이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희생으로 더 이상 증식은 없기를 희망하면서 의료진분들의 입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대 안에서 취사 및 주방전체를 담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기상 후 아침, 점심, 저녁 및 간식을 정성껏 준비해 코로나 의심 환자에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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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저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맛있게 먹어주고 협조에 잘 따라주어서 코로나 방역에 더욱 더 힘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관리하던 코호트 격리소에서는 환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게 돼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시며 코로나 방역에 고생하시는 의료진분들, 나라를 위해 힘쓰시는 군인분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실천하시는 국민분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힘든 시기에도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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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20:44:24
출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앞사람을 뒤에서 힘껏 밀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일단 타기로 결정을 하고 앞 사람을 미는 순간 쇼핑백이 선로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저씨, 가방 떨어졌어요.”
한 아주머니가 고맙게도 안타깝다는 듯 걱정을 해주신다. 일단 다음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하고 역무실로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다.
“저…… 가방이 선로 밑에 떨어졌어요.”
다급한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어디예요. 어디”라며 나보다 더 걱정을 하며 공익근무요원이 황급히 떨어진 장소로 갈 것을 재촉했다. 그 분은 위험을 무릅쓰고 잽싸게 선로로 뛰어내려 가방을 꺼내주었다. 순간 얼마나 고마운지 조카뻘 되는 젊은이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공익근무요원의 친절로 우울할 뻔 했던 하루가 기분 좋은 하루로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버스를 탔는데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냄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니 내 앞에 남루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였다. 냄새를 피하여 뒤 자석으로 앉았고 얼마 후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메모지 한 장을 보여주신다. 조선족 할아버지였는데 엊그제 따님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고 직업소개소를 찾는 중이란다.
“할아버지, 분명히 일자리가 있을 거예요.”
내말이 고마우셨는지 “고맙습네다. 성이 어떻게 되요?” 라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가 가엾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활 하실지 걱정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마다 스마트 폰에 몰입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제는 소통의 대상이 사람보다는 스마트 폰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스마트 폰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인간 소외 현상으로 우울증에 걸릴 수 있어요.”라는 어린 아이의 대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즈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돌이켜본다.
‘나는 얼마만큼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인간미를 나누며 살고 있을까?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소통하고 있을까?
최근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었다. 몇 해 전부터 홀로 지내는 큰누나가 걱정이 되었지만 먹고 산다고 지척이지만 찾아뵙지 못하던 참에 오늘은 큰 맘을 먹고 누님 댁을 찾았다.
“누나, 저 왔어요.”
막내 동생이 왔다는 말에 맨발로 뛰어나오며 맞아주는 큰누나,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삶의 덧없음을 느낀다. 처녀 때는 동네 청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어여쁜 누나는 어느 새 고희의 나이가 되어 흰머리에 돋보기까지 낀 모습이 할머니가 다 되었다. 잔치국수를 사갔는데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드시며 흐뭇해한다. 국수는 수제비와 더불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많이 해준 음식이다. 큰누나는 지금도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국수를 삶아 드신단다. 아마 추억으로 드시는지도 모르겠다.
“장아찌 김밥도 드셔요.”
잔치국수만 먹으면 섭섭할 것 같아 장아찌 김밥도 샀는데 내 예상이 적중했다.
“이거 어디서 샀냐? 며 국수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김밥까지 맛있게 드신다.
모처럼 누님과 함께 어릴 적 고향의 추억들을 소환하니 소소한 이야기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하다. 이십 년의 나이 차이가 있으니 어려서는 나를 엄마처럼 업어서 키웠단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누나랑 함께 들로 산으로 다니며 냉이도 캐고 쑥을 뜯어서 나물을 무치고 쑥 국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팔 남매가 논 밭 한마지기 없는 산골에서 살기는 참으로 힘든 시절, 30대에 홀로 된 어머니는 남의 땅을 지으며 억척같이 살아 오셨다. 누나와 함께 까마득한 세월을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울컥해서 한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큰 누나와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후딱 시간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 가지 꼭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한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고 흐뭇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고 폭풍 수다를 떨 작정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로 사람들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되 마음만은 가깝게’라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서양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이전 보다 더 많이 전화로라도 수다를 떨고 SNS상으로도 소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라 신조어가 생길만큼 코로나가 길어짐에 따라 마음 챙김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왔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장기화하고 집에 갇혀 지내면서 사회적 고립감이 증대돼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1인 가구는 더욱 큰 고립감을 느낀단다.
이제는 너나할 것 없이 하나의 상생전략으로 서로 양보하고 먼저 인사하고 베풀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세상이 강퍅하여 살기 힘들고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고들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내 가방을 지하 선로 밑에서 꺼내준 공익근무요원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기에 어쩌면 살맛나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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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12:30:15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반갑지 않은 손님 코로나~
우리 00어린이집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코로나로 인해
지자체의 휴원명령으로
갑자기 아쉬움을 남긴 채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맞벌이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 어린이집이다 보니
긴급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이 있어 처음에는 당직 근무로
아이들이 돌보았습니다.
그러다 5월달부터는 모든 아이들이 등원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건강하게 잘지내준 아이들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한두달 사이 걷지 못하던 아기들이 걸어오는 모습에 대견함을 감출 수 없었으며,
“선생님 보고싶었어요 ~”하는 아이들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큰 걱정도 함께 밀려왔습니다.
어린이집 특성상 소독과 방역에 늘 신경 써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전문 소독업체에 따로 추가 방역을 의뢰하였고,
교사들은 수시로 소독과 환기에 온 힘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 . 또 하나의 큰 숙제가 남았습니다.
아이들의 마스크 착용입니다. . .
어른도 하루종일 하고 있기에 답답하고, 참기 힘든데 아이들이 그것도 이제 겨우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영아가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마스크 쓰기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스크와 친하게 해 줄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노래를 살짝 바꾸어,
“마스크 꽃이 피었습니다”~ “마스크 꽃이 피었습니다” 라며
호기심을 자극하여 즐겁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니
차츰 아이들은 마스크와 친하게 되었고,
답답하고 불편한 마스크지만 잘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00어린이집 아이들은 오늘도 “마스크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노래와 함께 웃으며 즐겁게 마스크를 했답니다 *^^*

코로나가 멀리 멀리 사라져 우리 꽃보다 예쁜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마음껏 크게 숨쉬고, 뛰어 놀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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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00:22:15
□ 여는 시

가련다 나는 가련다
저 멀리 세계지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프리카 동인도양 검은진주 탄자니아 대륙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뒤로하고
소중한 사람들 손 처연히 떨쳐놓고
여기 지구촌 나그네 길을 가련다

1443년 세종25년 만든 한글, 한국어
검은대륙에 대한민국 태극기 꽂고
널리널리 국위를 선양하리라

낮선 말과 낯선 문화가
더러는 회한의 눈물일지라도
위안의 술잔 삼아 마시리라

광야에 뜬 밤하늘 별빛
야자수 나무 사이로 부는 동인도양 밤바람
귀밑으로 흐르는 멀리 적도 남극의 숨결

가련다 나는 가련다
저 멀리 세계지도에서 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 동인도양 검은진주 탄자니아 대륙

세렝게티 대평원에 살아 움직이는 반투족과 마사이족
빅토리아 호수, 킬로만자로 산이 있는 곳으로--
- 김우영 자원봉사자 詩 ‘지구촌 나그네 길 떠나며’ 全文

1. 이역만리(異域萬里) 아프리카 동인도양 탄자니아를 향하여

나는 지난해 2019년 8월 무더운 여름날. 대전 중구 문화동 집 골목에서 뇌출혈로 아픈 아내와 눈물의 이별을 했다.

“소임 다 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리다. 건강 잘 챙겨요!”
“네-- 잘 가시고, 돌아오세요. 흐으윽--- 흐으윽---”

이쁜 강아지 ‘후추’를 안고 골목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픈 아내를 뒤로하고 가려니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그러나 가야 할 지구촌 나그네 길. 허멀건하게 야윈 아내가 강아지 후추를 안고 서 있는 모습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훔치며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대전역으로 향하였다.

대전역 앞 중앙시장 ‘함경도식당’에서 몇 몇 지인들과 나누는 석별의 술잔에 눈물이 반이다.

“잘 다녀올테니 건강하게 잘 있어요.”
“그러세요. 김우영 코이카 자원봉사자님, 한국어로 국위선양 잘 하시고 돌아오세요.”

뚜우우--- 기적소리를 울리며 대전역을 출발한 기차는 지구촌 나그네를 태우고 중원평야를 달리며 한양땅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1시간여 달린 기차는 가쁜 숨 몰아쉬며 서울역 플렛트홈에 멈춘다. 역내에서 공항철도로 옮겨타고 푸르런 인천바다를 가로질러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에티오피아행 비행기는 새벽녘 몸과 맘 못지않게 무거운 가방과 배낭을 메고 고국 인천 국제공항을 뒤로하고 까아만 하늘로 향하였다. 한참을 하늘에 날아오른 비행기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에디오피아에서 환승을 하고 다시 남극 적도의 나라를 향하였다. 머나먼 대륙을 향하여 긴 시간 비행 끝에 동인도양 탄자니아에 가쁜 숨 몰아쉬며 힘겹게 도착했다.

2. 다르에스살렘 외교대학에서

나는 한국해외봉사단 코이카(KOICA)자원봉사단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렘시 외곽에 있는 국립 외교부 외교대학 한국어학과에 담당교수로 부임하였다. 검은 얼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1주일에 12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해외에 머무는 소중한 기간에 한국어를 더 알리기 위하여 저녁에 쉬는 시간을 절약하여 머물고 있는 숙소 샐베이숀 아미(Salvation Army)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1주에 4시간씩 병행하여 지도하였다.

“ㄱ(기역) ㄲ(쌍기역) ㄴ(니은) ㄷ(디귿) ㄸ(쌍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ㅃ(쌍비읍) ㅅ(시옷) ㅆ(쌍시옷) ㅇ(이응) ㅈ(지읒) ㅉ(쌍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 ㅍ(피읖) ㅎ(히읗)."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또 만나요. 고맙습니다.”

“1443년 세종25년 세종대왕이 만들고 1446년 반포한 대한민국의 한글, 한국어. 577년이 지난 2020년에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세계적인 공용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K-pop ‘강남스타일’과 ‘방탄소년단’, K-drama의 ‘겨울연가’와 ‘주몽’, K-moving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5개 부문 석권했습니다. 이어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가 지난 2월 29일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근래 ‘코로라 19 바이러스 괴물’로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을 위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류가 뜨면 가장 먼저 바빠지는 분야가 한국어 배우기 입니다. 노랫말과 드라마 내용, 영화속 한국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한국어 토픽열풍과 세계 각 대학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지구촌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답니다.”
“대한민국 한글, 한국어. 아자아자!”

3. 이역만리(異域萬里)머언 나라에서 울고 웃었던 나날들
낯설고 물설은 이역만리(異域萬里)머언 나라에서 살면서 울고 웃었던 나날이었다. 시장의 쌀을 사러 가는데 혼자 진흙탕이 있고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런 골목길을 걸었다. 주변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스와힐리어(Swahili)로 말을 걸어오는 검은 얼굴의 사람이 금방 튀어나와 강도로 돌변하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움으로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던 시절. 또 가게에서 생활용품을 사는데 바가지를 씌워 화가 난 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바자지(Bajaji, 삼륜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데 반대로 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오며 속상하여 울던 일. 숙소에서 밥을 먹는데 도마뱀이 기어가는 바람에 깜짝놀라 먹던 밥을 토하던 일. 학생들이 수고를 했다며 음료수를 전해주어 고마워 눈시울을 붉히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탄자니아에 도착하여 이 기회에 체중감량을 하기로 하고 다이어트를 했다. 하루 6번의 식음료를 다 먹으면 살이 찔 것 같았다. 탄자니아는 아침 점심 저녁 외에 3번을 더하여 6번의 식사와 간식을 한다. 한국과 6시간 차이가 나는데 아침은 아수부히 차쿨라(Asubuhia Chakula)라고 하여 간단한 토스트와 우유를 마신다. 오전 10시에는 차이타임(Chai time), 또는 브레이크(Beuleikeu)라 하여 차와 우유, 빵을 먹는다. 정오 12시 식사는 음차나 차쿨라(Nchana Chakula)라고 한다. 이어 오후 4시에도 차이타임(Chai time)을 갖고, 저녁은 지오니 차쿨라(Jionij Chakula)라고 하여 저녁을 먹고, 밤에는 우시쿠(Usiku) 차이타임(Chai time)을 갖는다. 이렇게 하여 총 6번의 식음료를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중에는 비만이 많아 노후에 당뇨와 성인병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이런 식생활 습관은 아프리카는 역대로 영국과 독일, 포르투갈 등 서양의 점령하에 기인하였고 한다. 물론 이러한 식음료 시스템은 학교나 기관 등 어느 정도 살만한 환경의 경우이지 시골의 못사는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 6번의 식음료는 탄자니아 입국 1달 정도 현지어 언어교육받을 때의 호사(好事)이다. 임지에 부임하여 숙소에 혼자 살 때는 국내식당 아침을 제외하는 하루 두 끼를 숙소에서 밥을 해먹었다. 자취경력와 부엌출입이 없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1인용 전기밥솥에 밥을 하다가 쌀이 설어 버린 일. 밥을 태워 버린 일. 밥하기 귀찮아 미리 많이 밥을 해놓고 찬밥을 떠먹곤 했다. 어떤 때는 밥하기가 귀찮아 학교에서 끝나고 오면서 맥주와 바나나를 가지고와 마시고는 그냥 잠을 자곤 했다. 이러다보니 불규칙하고 부실한 식생활로 몸이 수척해졌다.

탄자니아 도착 초기에는 다이어트를 했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현지 환경에 힘들어 체중이 10kg까지 감량이 되었다. 매일 37도의 무더위에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저녁에 숙소로 오면 어지러웠다. 외교대학에서 오전 강의 후 점심에 숙소 도착샤워와 세탁, 또 오후 강의 마치고 저녁 때 후 숙소에 와서 샤워와 세탁을 하였다. 이 경우는 전기와 수도가 정상적일 때의 환경이다. 수시로 전기와 수도가 나갈 때는 아주 난처하였다. 가족과 주변에서는 야윈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걱정을 하였다. 특히 뇌출혈로 아픈 아내가 자꾸 병세가 심해져 걱정이 되었다.
4. 코로나19로 인하여 귀국길에 들어서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는 2020년 초 고국으로 건너와 번지는 한편, 전 세계로 확산되어 새로운 유형의 호흡기 감염질환은 위세는 실로 대단하여 그야말로 유사이래 미증유(未曾有)한 사건이었다.

의료시설이 미비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만약 코로나에 감염될 경우 생명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낯선 땅에서 37도를 웃도는 더위와 습도로 고민 끝에 2020년 봄 귀국하기로 했다. 탄자니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2일간에 걸쳐 머언- 하늘 길에 들어섰다. 탄자니아 국제공항 율리우스 나이어이(Julius Nyerere)은 우리나라 작은 지방공항 크기의 규모였다.

오후 5시 30분 탄자니아 공항을 출발한 카타르항공은 이륙하여 6시간을 비행하였다. 동인도양 바다 위를 솟아오른 비행기는 케냐 몸바사를 옆에 끼고, 소말리야 해협과 오만 아라비아해를 지났다. 3,900피이트 상공에서 시속 548스피드로 날아오른 비행중에 기내 도시락을 먹으며 좁은 의자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는 사이 중동 산유국 부자의 나라 카타르 도하(Doha)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 비행기를 환승하기 위하여 걷다가, 또는 소형 트램을 타고 E-3 게이트로 향하였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그간 각종 보도를 통하여 들은데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마스크 일행을 도하 국제공항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고 ‘아,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이구나!’ 하는 현실을 느꼈다. 도하 국제공항 대기석에는 아프리카 전역과 중동, 유럽 지역에서 한국을 가기 위하여 기다리는 한국인 승객들이 보인다. 더러는 외국인 승객들도 보였으나 한국인 승객을 따라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새벽 2시 10분 탑승하였다. 승객을 태운 비행기는 규모가 큰 도하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이란, 아프가니스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도시락을 두 번 먹으며 8시간 비행을 하면서 중국 서부지방 쿤룬산맥과 비엔카란산맥 창공을 날았다. 중국 허베이성과 베이징을 옆에 끼고 황해를 날아 대한민국 인천공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언어와 문화, 교통편, 식사와 잠자리가 불편하여 꿈에도 그리고, 그렇게도 오고 싶고, 보고 싶던 고국 눈부신 인천 국제공항에 오후 4시 40분 도착 하였다.

5. 코로나 19 바이러스 괴물이 삼킨 따뜻한 고국의 인정

2020년 봄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고 부산한 인천국제공항 분위기가 한가하고 공항 직원들의 마스크 행렬, 위생복 차림으로 을씨년스러웠다. 이런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이상하게 보여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했다. 입국로 따라 걸으며 문의 할 일 있어 핸드폰 대리점에 갔더니 얼굴을 외면한다. 고객을 쳐다보지도 않고 핸드폰은 만지지도 않고 간단히 답변만 한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마스크 쓴 사진이 필요하여 입구에 서 있는 직원한테 핸드폰 촬영을 부탁했더니 사양한다.

“죄송합니다. 사양합니다.”
“……? 본래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 직원들은 친절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 괴물이 따뜻한 고국인정을 빼앗아 가는구나?”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큰 가방 2개와 배낭, 통기타 등 4개의 짐을 무겁게 들고 인천국제공항 지하에서 전철을 이용 서울역으로 직행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이용한 깔끔한 전철을 보며 대한민국 선진국을 새삼 느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도로는 무더운 30도 웃도는 기온에 흙먼지 날리고, 바람이 불며, 중간 중간 움푹 패인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불편하였다. 여기에 수시로 문은 두들기는 거리의 상인과 걸인들, 보통 차 밀리면 몇 시간씩 걸리는 교통 정체사정에 답답한 일이 부지기수였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역내는 승객들이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마스크 승객행렬을 따라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실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 이제야 집에 가는구나. 아프리카에서 죽어서 나오지 않고 살아서 두 다리로 걸어 나왔구나.”

탄자니아에 있으며 풍토병인 말라리아나 댕기열병으로 죽어 나가는 경우와 아파 고국으로 이송되는 환자 등을 보았다. 또한 숙소에서 혼자 살며 잠을 자다가 갑자기 자연사(自然死), 고독사(孤獨死)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망 후 한참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애석한 일이었다. 먼 나라 타국에 와서 사망으로 인하여 고국으로 간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며, 가족들은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종종 자원봉사자들은 아래처럼 말을 한다.

“임기 기간을 잘 마치고 무사히 살아 두 다리로 고국에 가는 것이 목표!”
“아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가족 곁으로 무사히 가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대전행 기차 차창에 기대여 가는 사이 대전역에 도착했다. 다른 때 같으면 대전역광장에 가족이나 회원들이 차를 가가지고 마중을 나와 반길 터인데? 오늘은 혼자서 쓸쓸히 큰 가방 두 개와 배낭 등 4개의 짐을 끙끙대며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어느 고마운 회원은 인천공항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고맙지만 사양했다. 또한 가족들이 대전역으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이 또한 사양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혹시 오염될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 때문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37도를 웃돌아 코로나 19 바이러스 소식이 둔감했다. 귀국해서는 근래 중동지역 이집트와 이란, 탄자니아와 이웃한 케냐 나이로비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상륙했다고 한다. 국제공항 율리우스 나이어스 공항을 출국한지 하루 만에 인천 국제공항을 경유하면서 혹시라도 문제가 있을까 싶어 집에 도착하여 자방격리(自房隔離)를 나 스스로 원했다.

6. 한국어 자원봉사 후 귀국길 환영이 자방격리(自房隔離) 고뇌(苦惱)

내가 집에 도착해서는 웃지못할 헤프닝이 있었다. 9시경 대전역에서 무거운 짐 4개를 들고 택시로 집 앞에 도착하였다. 미리 가족들한테 겉옷을 준비하라고 하여 밖에서 입고 온 옷 전체를 갈아입고 신고 온 구두도 버렸다. 그리고 가족들과 해후는 집 입구 대문가와 2층 베렌다 멀리에서 몇 마디 말을 하며 손을 흔든 것이 가족과 해후 전부였다.

대전집의 자방격리(自房隔離)는 14일 목표를 안방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은 안방 문틈으로 도시락이 전해졌다. 아내와 자식들과 대화는 가족 단체 카톡방이다. 가족들이 물었다.

“지금 제일 드시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세요?”
“김치찌개와 막걸리나 한 병 넣어주어요.”

코레라 19 바이러스 열풍으로 시작된 자방격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특히 저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져 회복중인 병약하여 면역력이 약한 아내를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자방격리 식사는 현미밥과 떡국, 생선찌개, 청국장, 돼지고기 등 다양하게 제공되었다. 고맙고 번거로운 일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귀국한 건강한 가장에게 ‘해외귀국’으로 인한 혹시 모를 전염으로 가족들과 의논 끝에 화기애애하게 진행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좋아하는 막걸리는 2일에 한 병씩 제공되었다.

고국에 도착 후 어려운 것은 시차(時差)를 적응이었다. 탄자니아는 우리나라와 6시간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밤 9시이면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오후 3시이다. 우리나라보다 6시간이 늦다. 이러다보니 낮에는 졸리고 밤에는 잠이 안와 꼬박 밤을 세우는 것이었다. 한동안 반대된 일상이 뒬 것이다. 눈만 감으면 탄자니아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지금도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걸어가고, 학교 강의실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습이 스친다.

고국에 도착하니 코로나19사태가 이외로 심각하였다. 다행히 정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K방역으로 잘 잡혀는 간다지만, 일부 종교단체나, 고도위험군업소에서 산발적 발생하고 있어 보건당국과 국민을 우려시키고 있었다.

14일간의 자방격리를 마치고 우선 가족의 방역부터 철저히 하기 실천했다. 일단 2미터 거리두기와 30초 손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가장으로서 8가족의 철저방역을 실천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귀국하였다 하여 주변 모임에서 식사모임 등 요청이 있었으나 아내의 뇌출혈 환자의 중증간병을 한다며 사양을 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서 귀국하였다하여 대면을 기피하는 듯 했다. 속으로는 실망하고 속상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돈 벌러간 것도 아니고 외무부 한국해외봉사단 코이카 소속으로 한국어를 국위선양하며 더운 나라에서 고생하고 왔는데…?”

그러나 지난 1,300년대 초 중앙아시아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유럽에 상륙 1,351년 까지 유럽 전체인구 30∼40%를 몰살시키지 않았는가? 국가의 경계점에 머물며 어떤 나라와 누구를 미루고 탓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 닥친 이 어려움을 서로 따뜻한 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였다.

21세기는 지구촌 70억 인류는 한 가족이다. 지구촌 따듯한 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대한민국 외무부 한국해외봉사단 코이카(KOICA)는 ‘지구촌 인류 우리 모두 친구들(World Friends Korea)’이란 기치 내걸고 개발도상국의 국제사회발전지원과 국제우호협력을 하고 있다.

각 나라별로 프로젝트 전문가 파견, 글로벌 연수사업으로서 개도국의 제도, 기술, 역량강화로 세계 이웃을 돕고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개발도상국의 지식공유, 지역사회변화, 새로운 도전문화교류 매개자를 자처하며 오늘도 지구촌을 누비고 있다.

나는 한국해외봉사단 코이카(KOICA) 자원봉사단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2019년 8월 큰 물결을 타고 이역만리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파견되어 한국어를 널리 국위선양하였다. 아프리카 반투족 중심국가 동인도양의 흑진주 탄자니아 개발도상국의 위상과 변화를 촉구하며 발전의 흐름위에 지난해부터 거친 숨 내쉬며 대륙을 달렸다.

저 따뜻한 하늘아래 지구촌 70억 인류가 따듯한 공동체로 형성되어 모두가 잘 살기 위하여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구슬같은 땀방울을 목울대로 넘기며 '나눔과 배움을 통한 인류의 공동번영! (A better world sharing and lerrning!)을 위하여 은디지(Ndizi, 파이팅)!'힘차게 외쳤노라!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로 인하여 귀국길 팬데믹(Pandemic) 엑소더스(Exodus)를 연출하며 ‘코로라 괴물’이 삼킨 황량한 고국 대한민국으로 2020년 봄에 귀국하였다.

오,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여! 그대는 어서 이 지구촌을 떠나거라!
훠이이---훠이이---
“For a better tomorrow for all! (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면 나눔의 자세로 즐겨라!)”
“A better world sharing and lerrning! (나눔과 배움을 통한 인류의 공동번영!)”
“Life is calling. How far will I you go? (인생은 부름을 받는 것,어디까지 함께 가실래요?)”

□ 닫는 시

이역만리 머나먼 아프리카 동인도양 탄자니아
한국어 자원봉사 대한민국 태극기 꽂고
한류(韓流)에 민간외교관으로 널리널리 알렸노라

낯선 말과 문화로 어두운 광야길 걸으며
힘든 기후 환경으로 인한 고뇌로 체중감량 10kg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국을 찾았노라

사람발길 빈틈없이 부산한 인천 국제공항
이제는 한산하여 찬바람이 분다

군데군데 마스크 쓴 말없는 병정놀이
묻는 말에 말없이 턱으로 끄덕인다

아, 인정과 친절이 미덕인
세계 10대 강국 아름다운 대한민국

신종 코로나 19 바이러스 괴물이 삼킨
상가, 길거리, 차량이 끈긴 황량한
내 조국 대한민국을 어쩌란 말이냐?

힘내자, 21세기 한국어가 세계 공영어가 될
아름다운 동북아의 대한민국 아자아자!
- 김우영 자원봉사자 詩 ‘코로나 19 바이러스 괴물’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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