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4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09-29 00:27:09
"손님은 왕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난 손님이 왕이라고 생각해 본적도 왕이 될 수도 없다. 간혹 왕에겐 간신이 충신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객은 왕이 아니라 귀한 사람이다. 귀한 사람에겐 가식이나 거짓 없이 진심을 다해 마음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늘 그렇듯 문의 전화겠지 하고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사장님 안녕하세요. 별일 없이 건강하시죠'밝은 목소리로 안부를 먼저 물어왔다. 안부 인사는 종종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엇을 의뢰할 것인가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의외의 질문이었다. 서울인데 예전에 우리 가게에서 옷 수선을 의뢰 한적 있었는데 지금도 너무나 잘 입는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 지금 대구 많이 힘드시죠. 짜파게티 한 박스 보내드릴까요"라는 전화였다. 무슨 말인가 했다. 알고 봤더니 코로나19로부터 청정지역이라 자부했던 대구가 삽시간에 상황이 나빠져 사재기로 식품류가 동난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만 받겠다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마운지 고맙고 감사 하단 말을 수십 번이나 되풀이한 것 같다.



우리 가게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작은 옷 수선집' 영세 업체다. 10여 년 전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미용 가위를 과감히 놓고 의류용 재단 가위를 들었다. 신의 손이라 불리는 남편의 40년 넘는 옷 수선 기술과 나의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실과 바늘이 되어 '스포츠 의류 수선 전문'으로 전향했다. 주변 사람들은 좋은 기술을 왜 섞히냐고 걱정도 많았지만, 사향 길로 접어든 의류 수선계의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선할 제품들을 택배로 받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카페와 블로그 sns를 통해 전국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택배 양이 많아져 남편과 둘이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 일이 넘쳐 매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처음 택배 시장을 개척할 때 암담했다. 옷이란 입는 사람마다 각 회사마다 디자인마다 사이즈도 취향도 핏 감도 다르기 때문에 피팅에 애로가 많았다. 전화로 상담을 하고 고객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이 될 때까지 묻고 또 물어가며 하나하나 고객을 마음을 알고 찾아냈다. 그래도 사람이 없이 옷만 보고 고객을 알 수는 없었기에 고객의 불만도 많았다. 고객의 불 만족으로 고가의 옷 값을 변상해 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수선이란 사람 없이 피팅 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인가, 좌절하며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20년 넘게 천직인 줄 알았던 미용실 간판을 내리고 미싱 앞에 앉았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기존의 기술만 가지고는 해결책이 없었기에 기술자의 입장을 완전히 버리고 백 프로 고객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했다. 답은 얻었지만 몸이 피곤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밤늦은 퇴근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단 돈 3천 원짜리 수선 의뢰를 받고 5천 원짜리 실을 구입하려고 시장을 헤매기도 했다. 작은 부속하나 때문에 대구 시내 부속 상회를 다 찾아다녔다. 그때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버릴뻔한 옷을 잘 수선해 줘 잘 입겠다며 고맙다는 답신이 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엄마 손을 잡고 찾아왔다. 아이 키가 자라면서 대회용 드레스가 작아진 것이었다. 다음 날 당장 대회라고 한다. 아직 어린 선수의 눈에선 곧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나도 운동을 좋아하기에 선수만큼은 못되어도 대회 준비를 어떻게 했을지 짐작이 갔다. 피겨 선수에게 드레스는 날개나 마찬가지이기에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같은 원단의 찾기 위해 시장을 여섯 바퀴나 돌았지만 찾지를 못했다. 결국 같은 원단에 옷을 구입해서 선수에게 잘 맞게 수선을 해 줬다. 경기가 끝이 나고 피겨 선수 엄마가 고마웠다고 박카스를 들고 찾아온 적이 있다. 사실 경제적으로 따지면 크게 적자였다. 수선 요금은 옷 값의 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이런 일들은 많았지만 진심은 고객들이 먼저 알아봐 줬고 통했다. 마침내 대구의 작은 옷 수선집은 전국에 알려져 나날이 발전을 했고 쭉 이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몸은 피곤했지만 매일매일을 즐겁게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코로 19란 불청객이 나타나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우리나라에선 대구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3월 초에 접어들면서 주변 식당들이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 조용해진 거리엔 사람보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백 미터를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상 유례없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심지어 녀석은 각 가정에 나누어 준 마스크를 훔치는 마스크 도둑까지 만들 냈다. 코로나19는 직종을 가리지 얹고 타격을 주었다. 우리 매장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조용하다 못해 끝내 미싱이 멈추었다. 끝이지 않던 택배도 대구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상자에 묻어 돌아오지는 않을까, 심지어 대구지역 택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뚝 끝 기고 매출도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대로 가다간 월세는 고사하고 전기 요금도 못 낼 것 같았다. 코로나를 빨리 잡지를 못 한다면 살아남을 소상공인은 몇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해 대구 사정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수선을 의뢰하는 택배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상자 속에는 수선할 제품 외에 따뜻한 마음이 들어있었다 "사장님 많이 힘드시죠. 건강하세요"라는 메모와 금 스크라고 불릴 만큼 귀한 마스크가 2장이 들어 있었다. 마스크의 숫자와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마스크 선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 매장엔 택배 상자 속에서 의뢰할 제품 외에 선물이 참 많이 들어온다. 과자에 과일, 지역 특산물, 영양제, 간고등어 등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지역 종류도 많다. 그러나 마스크를 받았을 때에 느낌은 다른 선물과는 많이 달랐다. 돈이 있어도 살수 없는 귀하디 귀한 마스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감동은 택배에서 그치지 않았다. 조용하던 매장에 나서는 손님이 작은 박스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그는 서울 쪽의 오랜 단골 고객이었다. 서울과 대구였지만 잦은 거래로 통화를 많이 해 전화로는 친구가 될 정도로 가까웠지만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항상 너무 고마워 언젠가 꼭 찾아봬야지 했는데 마침 대구에 일도 있고 전해 줄 것이 있어 들렸다고 했다. 그가 전해주고 간 것은 마흔다섯 장이나 들어 있는 마스크 상자였다. 그 감사한 마음을 어찌 말로 표현을 다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감사한단 말만 연발했다. 그가 떠난 뒤 앞 날의 걱정과 서러움, 벅찬 감동을 토해 내며 남편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내 등을 토닥이며 " 괜찮아질 거야'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위로하며 "이렇게 우릴 알아주는 든든한 고객이 있는데 힘내자"라며 미싱에 먼지를 닦았다. 멈춰버린 미싱을 닦는 남편의 어깨도 떨리고 있었다. 남편은 미싱을 닦는 게 아니라 미싱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대구라면 오다가도 돌아간다고 하던 시기에 그는 대구에 일이 있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마스크를 전해 준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일부러 내려왔단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마음을 어찌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것이다.



간판만 유명한 집은 싫었다. 고객은"이 천 리폼"이 어떤 곳 인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아끼는 귀한 옷을 보낸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어떤 옷이라 하더라도 소홀할 수가 없다. ​한 올에 실을 맞추기 위해 손바닥만 한 천을 쓰기 위해 한마 이상 되는 원단을 구입해 와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은 결코 적자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보다 가느다란 한 올에 실로 고객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10평 남짓 작은 가게 새 옷을 될 수는 없지만 새 옷 못지않은 멋지고 가장 예쁜 옷으로 리폼 해주며 고객과 함께 소통하는 좋은 수선집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이이천리폼" 우리 가게를 억지로 홍보하지는 않는다. 홍보 사원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객들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문가의 말보다 내 친구의 말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많다. 스포츠는 혼자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 사람에게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해 줌으로 그의 주변엔 같은 운동을 하는 열명 이상의 사람이 있다. 그 열 명에 열 명이면 결국 한 사람의 고객이 백 명에게 광고를 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 홍보 사원은 점점 더 늘어가고 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심지어 멀리 외국에서 직접 찾아오시는 고객도 있다. 덕분에 티브이 방송도 여러 번 할 만큼 이름이 유명해진 것도 사실이다.



모내기도 하기 전에 찾아온 코로나19가 벼가 누렇게 익어 수확을 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우리 주변을 떠나지 않고 위협하고 있다.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코로나 전에는 동호회 동료들과 미친 듯 경쟁하며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다. 오늘은 혼자 페달을 돌린다. 그때 보지 못했던 것 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란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이 친구 되어 그늘을 지어주고, 낙동강변 환하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웃으며 반겨준다. 마주 오는 자전거 한 대 엄지 척 응원을 해주니 힘이 난다. 어쩌면 코로나19 녀석은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란 뜻은 아닐까 싶다. 지금 따뜻한 고객들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달리니 솔로 링 위라도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



상반기 땐 전기 요금을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조용했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마음 따뜻한 단골 고객들이 있었기에 우리 가게도 눈에 띄게 회복해 간다. 상자 속에 마스크가 있다고 해서 선물이 동봉되어 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객의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게 정성을 다하고 더 꼼꼼하게 수선하려고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일이 많아지더라도 진실은 언젠가 통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귀하지 않은 생명도 없다. 옷 수선집인 만큼 나에겐 고가의 비싼 옷이나 저가의 난전 옷이라 해도 그 귀함이 다르지 않다. 그 옷에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귀한 사람에겐 거짓도 속임수도 없이 진실과 진심을 다하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수선이란 "기술이라 쓰고 예술이라 읽고 제품이라 말하고 작품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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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21:00:00
새로운 2020년의 시작은 코로나19로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는 국민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빼앗아버렸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역대 최장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지역 곳곳에서 자연재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2020년은 1950년 6.25한국전쟁 이후 국민들이 가장 어렵고 그 어느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학교 개학이 계속 미루어져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비대면 방식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고,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특히, 갑자기 불어난 확진자로 개학과 등교가 계속 연기되어 몇몇 아이들은 코로나 우울증(코로나 블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코로나 초창기때,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었지만 일부 마스크가 품절사태까지 이어져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절망감을 느껴야만 했던 시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마스크와 손소독제 나눔으로 저소득층분들에게 직접 나눔까지 하여 대한민국의 협력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습니다.

70년전,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계속되는 북한군의 남하로 나라가 도탄의 위기에 처하였지만, 유엔군의 도움으로 낙동강방어선을 중심으로 반격에 직접 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만들어주신 대한민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용사 할아버지분들은 2020년에 발발한 코로나19전쟁을 이기기 위해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마스크 100만장을 직접 기부하는 따뜻함을 나눠주었습니다.

70년전 발발한 6.25전쟁으로 삶과 터전은 아프리카 수준으로 폐허가 되어 더 이상 갈 곳을 잃었지만, 서로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너도나도 힘써 전후복구를 통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대국을 이뤄냈으며, 민주화를 가장 단기간에 이룩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몇 명 사람들조차 모이기 힘든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코로나19전쟁은 모두가 협력하고 힘을 합하면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극복하기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하여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새로 생길 만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자살을 생각할 만큼의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두가 몸은 사회와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지만, 이럴때일수록 더욱 주변을 따뜻하게 하여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에도 그랬지만, IMF 경제위기 때처럼, 한국인들은 큰 위기가 찾아올 때 오히려 역순환으로 오히려 따뜻함을 표현해주고, 더욱 감싸주는 위기에 강한 민족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맞춰, 서로 모두가 모여 진행되는 콘택트 방식에서 언택트(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콘서트 행사와 지역축제가 취소가 되어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사례가 극히 늘어났습니다. 영상통화로 대화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처음이라는 말이 어색해도 조금씩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내 가족처럼 익숙해질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콕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비록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만은 직접 간 듯한 모임 한 공간에서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2022년까지 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고, 종식이 이뤄지더라도 '코로나 이전의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일부 예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완전한 종식발표가 이어질 때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손씻기' 이 3가지 단어를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총으로 이길 수 있었다면, 이번 코로나19 전쟁은 마스크 상시 착용과, 손씻기, 철저한 거리두기가 코로나 전쟁에 승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종식이 되더라도 일반 감기처럼 생각하는 때가 왔을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없어지고, 답답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다시 온다면, 몸과 마음이 다시 편안해질 것입니다. 가족, 친구간의 관계가 더욱 두터워지고, 연인들은 어느 장소에서나 자유롭게 더욱 평화롭게 연애하는 세상이 다시 오게 될 것입니다.

70년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서로 총을 들고 일어섰던 참전용사분들처럼 의료진분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모두의 건강과 배려를 위해 완전한 종식이 될 때까지 거리두기를 잘 지키고,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하고, 손소독과 손씻기를 자주하여 코로나19를 물리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4
2020-09-28 15:32:13
저희 어머니는 식당을 하고 계십니다.
풍족하진 못해도 어머니 덕분에 우리 식구 굶지는 않으면서 버텨왔죠.

그런데 코로나 터지자 마자 가게 매출은 토막에 토막이 나고,
우리가족은 하루종일 당장 밥벌이만 생각해야했습니다.
당장에 카드값에 보험비에 내라는건 많고..
대학생인 제 신분으로는 벌어서 학비 보태기에도 벅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원래 제가 남앞에서 힘든얘기 잘 안하는데,
그날따라 술먹으면서 눈물이 나길래 술김에 친구 두명한테 상황 설명을 해버렸습니다.

친구들이 듣자마자 지금까지 힘든거 왜 말안했냐고 뭐라하기 시작하면서 위로를 해줬습니다.

친구들이 저희어머니가 식당하신다는건 알았는데,
메뉴가 보쌈이라 대학생 신분으로 자주오기 부담됐을거에요.

그냥 위로만 받고 끝날줄알았는데..
그 주에 친구녀석이 가족 생일 자리를 저희 가게로 잡았더라고요.
다른 한 녀석도 일부러 친구들이랑 밥먹으러 와주고..

친구좋은게 이런건가... 하고 느꼈습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정말 고마웠는데
친구들이 자기 친구한테도 입소문을 내줘서 몇명 또 왔다 갔어요.

친구들 때문에 매출이 눈에 띄게 회복하진 않았지만,
어머니도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면서, 힘들지만 열심히 일할 동기를 얻으셨다는게.
아들로서 정말 친구 잘뒀다고 생각하게 만드네요.

눈에 띄는 큰 도움이 아닐지라도,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소상공인들은 미소짓고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2
2020-09-26 19:35:31
서울시 양천구 신영시장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속에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첫번째 안전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코로나19 안전용품(손소독제, 마스크, 마스크끈, 건강용품 등)을 제작하여 지역에 배포하고 방역은 기본, 마스크는 생활, 안전쇼핑은 필수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번째 코로나19 이기자 송을 제작하고 영상으로 SNS에 게시하여 국민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는 코로나시대의 전통시장 상인들의 외침을 온오프라인에서 홍보하고 활동하였습니다.
세번째 코로나19을 함께 이기자는 이색 행사로 '착한소비 + 가치소비 + 안전쇼핑 = 같이소비 촉진행사'를 기획하여 17회를 거쳐 매주 금요일 지역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가치있는 전통시장의 행사의 문화를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신영시장 상인회입니다.
신영시장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안전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안전쇼핑 행동지침을 재정하여 시행하고 상인들과 지역 주민 모두 안전수칙 준수를 생활화하고 안전의식을 생활화하는 활동들을 펼치며 위드 코로나시대에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인들 뿐만 아니라 지역면이 함께 이겨내고 지켜낼 수 있는 코로나 이기자 캠페인과 덕분에 챌린지 400명 동시 참여 행사를 통해 서로의 힘이 될 수 있도록 안전문화와 가치는 있는 안전생활을 시장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를 벗어나 생활화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영시장의 같이소비 + 착한소비 + 안전쇼핑 + 더 스마트 한 세상은 더욱 진화될 것입니다.
가치있는 신영시장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신영시장 상인들은 '코로나 이기자'를 외칩니다.
22
2020-09-26 18:18:07
2020년 3월, 나는 광주 빛고을 청년봉사단의 지역사회봉사팀에 선정되었다.
코로나로 활동하지 못하다가 8월 초에 '수해복구 자원봉사' 를 모집하여 바로 신청하였다.

오전 8시, 광산구 송정2동 침수상가로 모인 우리 조는 길거리에 널려있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대형가구들을 쓰레기차에 옮기는 작업은 3~4명씩 힘을 모았고 나머지 가구들은 분담하며 옮기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그 날, 우리 바짓부리는 모두 흙탕물로 뒤덮였고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현재의 상황에 불만하지 않았다.
힘들고 덥다며 짜증내는 사람들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에 침수피해까지 겪으신 지역주민들을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임했다.

때마침 방송국에서 찾아와 우리가 활동하는 사진을 찍었고, 봉사단 몇몇 친구들에게 인터뷰도 했다.
마을 동네주민분들도 우리에게 다가와 정말 고생했다며 감사의 인삿말을 전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저 내가 할일을 했을 뿐인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코로나 이후, 항상 집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 지역사회봉사활동은 매우 보람찬 시간이었다.
'봉사' 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을 도움으로써 얻는 보람감, 뿌듯함, 그리고 성취감이 봉사를 지속하게 하는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책임감이 생긴걸까, 오늘 처음 만난 우리 조 팀원들과 활동기간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나는 코로나로 인해 힘들고 지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묵묵히 봉사활동에 임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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