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6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09-24 22:36:26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화성시민입니다.
9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학생승마체험을 하기로 계획되었는데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잠정적으로 연기가 되었지요.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9월 21일부터 등교하게 되면서 승마체험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래 계획된 날보다 3주가 늦춰진 9월 23일 수요일, 드디어 승마체험 하러 아들과 함께 갔습니다.
아들은 설레어 했고, 그 설렘에 부응하는 체험을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들은 토할 것 같다며 멀미를 호소했지만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환승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내린 순간 마스크에 조금 게우더니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토했습니다.
차가 없는 저희는 대중교통으로 잘 다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만 지내다가 장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버스도 오랜만에 타서 그랬나봅니다.
때마침 어떤 여성분께서 휴지랑 위생비닐을 건네주셨는데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만 하고 얼른 뒤처리하기 바빴습니다.
정신없이 치우고 보니 그 분께서는 이미 버스를 타고 떠나셔서 더 깊은 인사를 못 드린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 날은 환승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느라 생각을 못했는데 되새길수록 천사 같은 분이셨고, 정류장에 감사하다는 메모라도 남기면 보실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사연을 게시하면 혹시나 보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그 날 주셨던 휴대용 휴지도 얼마 쓰지 않은 거의 새 것이었는데 뒤처리를 하면서 다 써버려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휴지도 사드리고 싶습니다.
9월 23일 오후 8시경 모아미래도.우림필유.평생학습관(36-687) 버스정류장에서 휴지와 위생비닐을 건네주신 뒤 버스 타고 홀연히 사라지신 천사님을 찾습니다! 뵐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1
2020-09-24 10:19:10
코로나 19 팬더믹으로 오늘날 위기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IMF, 태안 기름 유츌등 국가가 위기 때 마다 온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한 저력있는 민족입니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따르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철저한 개인위생으로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종식 시켜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전 분야가 타격을 받으며 혈액수급까지 피가 마르는 비상상황이 연출됐습니다.

헌혈은 다른 봉사들과 달리 봉사의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하는 양로원 봉사, 해외 봉사, 연탄 배달 봉사 등은 남을 직접 도와 그 결과를 바로 볼 수 있는 반면 헌혈은 그렇지 않기에 나도 한때는 헌혈이 ‘초라한 봉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수술 전 헌혈증이 필요한 환자의 이야기를 접했고 저는 익명으로 내 헌혈증을 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헌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기부를 통해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헌혈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중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봉사라는 것을 알게 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헌혈은 짧게는 10분(전혈), 길게는 한 시간(성분 헌혈) 안에 끝난다. 하지만 내 혈액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됐을 때 그 짧은 시간은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되는 아주 소중한 시간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내 짧은 시간을 나눔으로써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헌혈은 그 어떤 봉사에도 뒤지지 않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활동 이라고 봅니다.

고등학생 때 헌혈의 참 가치를 깨닫고 지금까지 410회의 헌혈을 하며 충북헌사모라는 헌혈 동호회를 조직해 회원들과 함께 월 1회 함께 헌혈을 하고 헌혈 컬럼을 쓰고 헌혈 홍보 유튜브 영상 제작을 하다보니 KBS청주의 초대로 헌혈의 중요성을 안내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혈액수급네 비상인 지금의 시국에 온 국민이 헌혈에 적극 관심과 참여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제천시처럼 행정안정부는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문화의 날’처럼 매월 특정날을 헌혈의 날로 지정 안내 홍보하고 헌혈을 하는 풍토 헌혈문화를 조성 하였으면 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수급 비상 때 마다 그 동안 지속한 영화표 1+1 같은 상품 전달이 아닌 헌현의 가치전달 안내 교육으로 정기 헌혈자 확산을 고려하면 좋겠습니다.

헌혈 강연때 마다 저는 자신있게 이야기 합니다. 국민헌현율이 오를수록 대한민국은 신용사회, 귀인사회, 가슴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에 헌혈 피바람이 불어 혈액자주독립국가를 이루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1
2020-09-24 09:09:05
코로나19 청정지역인 줄 알았던 우리 지역에 3월 28일 해외입국에 따른 확진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자치단체와 우리 기관은 해외입국 자가격리에 따른 지역 내 감염을 줄이고자 코로나19 관련 “해외입국 자가격리자 가족”의 임시 거주시설을 마련하여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결정 다음날부터 숙박실을 보유하고 있는 청소년수련시설 두 곳에 해외입국 자가격리자의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침구, 위생용품, 방역물품 등을 구비하고 신속히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관내에 해외입국에 따른 확진자가 추가적으로 발생하였고, 해외입국자 가족의 임시 거주시설에 실제 입주가 이루어져 현재까지 37명의 관내 주민에게 임시 거주 장소가 제공되었습니다.

임시거주시설을 이용하는 분들 중에는 가족을 위해 해외에서 일하고 있던 가장이 귀국하여 그 가족이 임시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귀국하는 가족을 위해 임시거주시설 이용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외국인 배우자가 친정에서 귀국하여 이용하는 경우 등 다양한 사유로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입주 기간이 14일로 상당히 긴 만큼 시설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물품(드라이기, 전자레인지, 전기포터, 빨래건조대, 테이블, 청소도구, 손세정제, 마스크 등)을 사전에 제공하였고, 입주를 희망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직장에 더 가까운 임시거주시설로 각기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편히 쉬어 가실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임시 거주시설이 내 집만큼 편하지 않았을 텐데 이용자 대부분이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고 퇴소 후에도 시설로 재방문하여 감사를 표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러한 칭찬과 격려가 임시 거주시설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뜻깊은 일이 되었습니다.

임시 거주시설은 현 상황 종료 시까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운영 될 계획입니다. 코로나19가 없어지는 그 날 까지, “편히 쉬다 가세요!”
9
2020-09-24 09:04:36
코로나19로 인해 기관 내 실내체육센터가 휴관하여 매점에 진열된 물품(과자, 음료 등)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손실을 고스란히 임대사업자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체육센터 직원들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매점 임대사업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기관 내부 전자결재게시판에 게시 글이 올라왔습니다. “체육센터 휴관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한 매점 임대사업자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던 과자와 음료를 한 묶음에 만원씩 판매합니다. 기부를 원하실 경우 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에게 대신 전달해드립니다.”

해당 글이 게시되자마자, 따뜻한 선행을 인지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매의사 댓글을 달았고 준비한 수량이 순식간에 판매 완료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직원들이 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에게 “기부”를 했습니다.

체육센터 직원들은 판매물품을 직접 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들에게 신속하게 배달하였고, 판매수익 95만원은 전액 임대사업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전달한 당일, 청소년들에게는 맛있는 간식이 제공되었고 판매수익은 임대사업자가 고용한 점원에게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지역경제 살리기는 가장 가까운 곳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며 좋은 파급효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12
2020-09-24 08:16:42
2020년은 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한 해입니다. 코로나19의 불안감으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마음껏 운동장을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늘어나는 확진자로 등교 개학이 계속 연기되어 몇몇 아이들은 코로나 블루 우울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역사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역사적 지식을 암기시키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힘을 더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역사교육의 역할이자 목표일 것입니다.

100년 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군들의 의지가 오늘날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동북아시아 최강의 화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군에 맞섰던 독립군은 장비도 보급도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일제와 맞섰고, 불굴의 의지로 일본군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절망 속에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군의 의지로 우리도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100년 전 봉오동과 청산리의 독립군의 의지로 코로나19극복 손글씨 챌린저” SNS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손글씨로 "봉오동 청산리 100년 전 뜨거웠던 독립군의 의지로 우리도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를 SNS에 쓰며 다른 친구들을 태그로 걸어 캠페인이 이어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SNS의 인터넷망을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를 넘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캠페인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용현중 학생은 “100년 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말도 되지 않는 전력 차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싸운 독립군처럼 우리도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루빨리 학교에 가서 일상을 되찾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울림이 큰 메아리가 되어 코로나19를 극복할 힘으로 자라날 것을 믿습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의 독립을 믿으며 뜨거운 열정으로 일제에 맞섰던 독립군처럼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241
2020-09-23 22:53:57
코로나가 대유행을 시작하던 봄의 어느날 오후였습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으러 가던 중, 누워있는 사람과 그옆에 무릎을 꿇은 사람의 등이 보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옆을 지나가야 했기에 상황을 자세히 보게 됐습니다.

누워 있는 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고, 옆에 무릎 사람은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어르신은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청년은 열심히 몸을 주무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어르신이 쓰러졌고 그 청년이 응급처지를 하는 상황 같았습니다.

"얼른 들어가서 저녁 준비해야되는데..."
"저 옆에 청년이 가족 같은데.. 알아서 하지 않을까?"

옆을 지나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남을 잘 돕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날 따라 집에서 저를 기다리던 아들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진 않아.."

가던길을 멈추고 청년에게 말을 걸었더니 자초지정은 그랬습니다.

청년과 어르신은 모르는 사이이고, 지나가다가 어르신이 쓰러져 있어서 그 청년이 어르신을 보살피는 중이었습니다.

어르신은 마비가 온 상황이었고 다행히 의식은 또렷하셨습니다.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지병때문에 가끔 이렇게 마비가 오는데 병원갈 형편은 안되고, 집에만 갈 수 있다면 곧 나아질거라고 하셨습니다.

청년과 저는 어르신의 집을 묻고, 함께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마비가 오신분이라 제대로 업을 수도 없어서 두명이 부축을 해서 가는데 어르신이 너무 힘들어 하셨습니다.

택시를 타기로 하고 차를 잡는데, 택시가 잘 안다니는 지역이라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무차라도 세워서 태워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지나가는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더군요.

포기하고 다시 부축해서 가려고 하는데 지나갔던 차가 유턴을 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코로나 걱정도 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마음 한켠이 무거워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셋은 그렇게 어르신 집까지 갔고 부축해서 방까지 모셔다 드리고.. 혹시 몰라 119에 전화를 해서 상태를 봐달라 부탁을 드렸습니다.

119에서 오는 것까지 확인하고 셋이서 그제서야 인사를 하게 됐습니다.

차를 태워주신 중년의 남성의 첫마디 인사가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저도 두분께 감사하다 말씀드렸고 청년도 역시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다들 좋은 일을 한건데 왜이렇게 서로에게 감사했을까요..

그리고 또 놀라운건 세명 모두 집이 가까운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날 배고프다고 울상인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아빠는 좋은 이웃을 둔 것 같아."
3
2020-09-23 00:58:11
저는 부산남구에 살고 있는 대학생 입니다!
코로나 19 로 인해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잠시 쉬고 부산 진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했던 안녕캠페인 첼린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안녕캠페인은 안녕한 사회를 위해 이웃의 안부를 묻고 안심하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자원봉사 인데요, 이번 여름 코로나로 힘들었을 내 주위 이웃에 편지와 직접 꾸민 부채, 마스크를 전달하는 내용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키트를 어느 집에 걸어야 좋을까 고민하고 부끄러워서 다른 아파트에 걸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엘레베이터에서 열심히 인사하는 편이라서 기억하고 이웃 중에 혼자 계시는 집으로 가 걸고왔습니다. 대상을 정하고 나니 편지에 쓸 내용도 생기고 부채도 더욱 정정스럽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마스크 구하기가 쉬워졌지만 그래도 받았을 때 기분 좋으실거라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알기보다도 마주쳤을 때 인사조차 안 나누는 시대가 왔는데 주위에 누가 사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엘리베이터에서 몇 층에 이웃분 이다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인사를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다음엔 오랫동안 홀로 계신 어르신이나 취약계층, 마스크 한 장이 더 필요하신 분 께 가져다드리고 싶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간으로 가면서 내 주변을 볼 여유가 많이 없지만 서로 간의 무관심보다는 안녕을 전하며 앞으로 다같이 더 조심하고 빨리 괜찮아져서 힘든 시기 같이 이겨냈으면 좋겠네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