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2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5 17:06:18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구에 사는 쌍둥이네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0
2020-10-15 16:59:23
저는 요양병원에 요양보호사로 주야간 근무를 한 지 4년이 다되어가는 올해 마흔 다섯살 슈퍼우먼 엄마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동은 3층 치매어르신들이 42분이 입원해있고 4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주야간으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올해 봄부터 시작된 " 코로나 19"는 타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에도 감염소식이 들린 이후로 보호자님들과 면회도 금지되었고 외부인들도
출입이 철저하게 안되어 어르신들의 얼굴에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자녀분들과 전화통화로 마음을 달래면서 눈물짓는 모습에
작은 위로라도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트롯트 노래라도 들려드리고 나면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 뚱띠야 ~ 내 딸래미하면 안되겠나? "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특징을 콕 집어서 저처럼 둥글둥글 살이 찐 사람에게는
뚱띠라고 부르고 날씬한 요양보호사에게는 "빼빼" 야 ~ 이렇게 부르고 머리가 단발머리인 보호사에게는 " 단발아~"
최근에 요양보호사가 새로 들어왔는데 저처럼 넉넉한 맏며느리처럼 통실한 사람이 들어오니 " 아이고, 뚱띠야 ~ 니 동생이 왔는갑다.
" 어르신, 뚱띠라는 말보다는 박여사나 , 김여사나 이여사라고 불러주면 더 좋을것 같은데요. "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급하신 용무나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필요할때 " 띵동" 하고 벨을 눌러주시면 되는데 유난히도 자주 벨을 누르시는 어르신이 있었는데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하면
" 뚱띠야 ~ 내가 쓰던 컵이 없어졌다. 옆에 있는 할매가 가져간거 아이가? "
우리 병동에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치매어르신들이 많아서 금방 기억하다가 생각이 나지않고 같이 쓰던 입원한 다른 할머니에게
의심하기도 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면 그 컵을 몰래 가방에 숨겨놓고 없어졌다고 발을 동동구르고 아무 죄도 없는 옆에 할머니가 의심받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저 할매가 노망이 들어갖고 , 내 몰래 , 내가 좋아하는 컵을 가져가서 내가 물도 한잔 제대로 못 마신다이가?
세상만사 , 이리도 야박할 때가 어디있노? 뚱띠야 ~ 내 말 좀 들어봐라. ~"
" 어르신, 진정하시고요, 그 컵이 날개달린것도 아니고, 하늘로 솟아난것도 아니고 천천히 찾아보면 나올겁니다.
" 뚱띠야 ~ 흐으흑 울먹인 목소리로 내 막내딸이 사준건데, 우째 이런일이 일어나노 ?"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한 일로 치매어르신들은 너무 크게 상심하고, 분노하며 , 감정조절이 잘 안되어서
옆에 환자에게도 의심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되서 늘 긴장의 연속이었지요.

저번에는 5월 8일날 어버이날이 되었는데 예전같았으면 보호자님들이 와서 아드님, 따님, 며느님, 손자, 손녀들이 와서
웃음꽃이 한참 피울 시간이었는데 이번에는 미리 예약하신 분들만 " 코로나 19"로 투명칸막이를 하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끼고 면회시간 주어진 시간은 단 5분동안 만남이 허락되었지요.
그 5분이 너무나도 짧아서 면회시간이 끝나고 나니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 참말로 야박한 세상이여. 큰아들하고, 큰며느리한테 억수로 미안하네...."
" 코로나인지 코르나인지, 우리네 인생살이 팍팍하게 만드네....."
작년 같았으면 어버이날에는 우리 요양보호사들과 간호사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노래도 불러드리고 춤도 추고 마음의 힐링을 위한
시간들도 만들어 드렸는데 올해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어 어르신들의 마음이 더 적적한지도 모르겠다.
나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김할머니는 내가 쉬는시간에는 나를 부르셔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구구절절이도 이야기 해주신다.
보호자님들의 면회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어르신들의 딸이 되어 허전한 마음을 달래드리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 라떼는 말이야 ~" 하면서 시작되는 레파토리들.
김할머니는 평생 젊은 시절부터 40년넘게 시장에서 생선파는 할머니로 사시다가 서서히 진행되는 치매로 인해 장사를 도저히
할 수 없어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요즘들어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기회가 많아졌다.
" 뚱띠야 ~ 내가 젊은 시절 30대 초반부터 일찍 과부가 되서 먹고 살아야 해서 생선장사로 시작했는데 내 나이가 팔순이 다 되도록
생선비린내 풀풀 나는 시장에서 참도미,민어, 참조기.... 생선들을 하루에도 50마리인지, 100마리인지 생선손질을 하루종일 하고나면
생선냄새가 진동하도록 생선을 팔았다이가.....나중에는 돈에서도 생선냄새가 날 정도였지. 명절전이면 우리가게에 단골손님이 줄을 서서
생선을 사갔어. 할매집 생선이 제일좋타고, 칭찬도 많이 들었제. 내가 이래뵈도 생선박사여...."
하면서 또렷한 기억력으로 이야기하실때면 " 어.... 치매어르신이 맞나? 하면서도 하룻밤 자고 내일이 되면 어제 내가 우리 뚱띠한테
무슨 이야기 했는지 기억이 없네. 내가 생선장사하러 나가야 되는데, 보내주면 안되겠나?"
"어제 저한테 예전에 시장에서 생선장사 하실때 이야기해주셨는데 기억이 안 나세요? "
" 내가 언제 그래 이야기했노? 뚱띠야 ~ 내가 이래 건강한데, 여기 있을때가 아니다. 내 좀 보내주라. 뚱띠야~
" 제 마음대로 퇴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하고 보호자님하고도 의논해야 됩니더. "
" 오늘 내 기분이 안좋은데 트롯트 한자락 해주라 ~~"
" 그러면 자장가처럼 조용조용히 불러드릴께요.
" 청춘을 돌려다오" 노래가 억수로 듣고 싶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얼굴이 쭈글쭈글한 할머니얼굴인데 나도 청춘이 있었다이가..."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한 그 사랑도 태산같은데 가는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하고 잔잔히 음을 띄워서 노래를 한자락 불러드리니 우리 치매어르신 김할머니의 눈가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울음을 삼킨채 울먹이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족향한 그리움을 더욱 커졌고 날이 갈수록 기억의 테이프는 희미해져 가는
인생에 대한 서글픔이고 다가올 세월에 대한 두려움이 팔순이 훌쩍넘은 김할머니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 뚱띠야 ~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여기 요양병원에서 내 딸래미 하면 안 되겠나? 고맙데이. 죽어서도 그 고마움 못 잊겠데이."
1
2020-10-15 16:53:15
경남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진주.. 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지방이기에 서울 경기 등을 포함한 큰도시들에 비해 코로나 확진 환자수는 작지만 그래도 어린 두 아이를 둔 엄마로 코로나는 무서운 존재이죠 ~ 걸리면 너무 아프다, 후유증이 아주 심하다 여러 말들이 많이 있는데 어린 아이들의 엄마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 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보게 된답니다 ~!
하지만 우리 보다 더 면역도 약하고 더 위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더라구요 ~

진주시장애인체육회~!!
이곳은 이제 설립된지 일년이 조금 넘은 곳입니다 18,000여명의 장애인들의 염원을 앉고 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야심차게 설립이 되었죠~ 한참 열심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이 단체가 이제 겨우 한걸을 떼나 했더니 코로나라는 역경이 발목을 잡았답니다 장애인의 건강을 위해 체육활동에 앞장 섰지만 바이러스로 부터 더 위험한 장애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죠 ...

그래서 시작된 장애인체육회의 코로나 예방노력들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진주에 위치한 장애인 단체 및 시설과 기타 어르신들이 계신 취약시설 약 50여곳에 수차례 방역을 다니고 따뜻한 손길로 기부받은 면역증강식품, 마스크, 밑반찬 등을 장애인들께 나누고 혹여나 운동을 조금 더 할 수 있도록 장애인분들에게 운동 도구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하더라구요
비장애인 진주시민에게까지 코로나 예방 홍보활동도 다니며 함께 이겨나가자 소리내어 외치고 있더라구요
이런 단체가 있기에 진주가 더 안전해 질 수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런 힘들을 모아 다 같이 코로나 이겨나가요~
0
2020-10-15 16:23:29
대구에 정착한지 어언 6년이 되어가던 지난 2월, 대구를 끌어안고 살기에는 개인적
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와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보이고
하늘을 향한 꿈을 꾸게 되었다. 대구를 지지하며 버거데이로 살아오는 동안 友利가
함께 살아가는 동네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랬다. 버거데이는 작은 기부문화와 공
동체문화를 통해 만남과 나눔을 실천하는 미리내가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2020년 2월, 우리 동네 대구는 코로나의 위협 앞에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위협 앞에 속수무책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의 때에 함께 웃는 버거데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코로나19의 순간 대구 미리내가게 버거데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를 고민하며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대구의 코로나바이러스와 연일 싸우는 의료진들, 전국에서 기꺼이 달려와 준 의료
진들을 위해 조금 아주 조금 손수 도시락을 만들고 싶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
니었다. 함께 하기에도 힘겨움이 있었다. 당시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와 운영비를 걱정
하지 않을 수 없는 최대의 위기에 맞닿아 있었다.
대구 자원봉사센터와 수성구 자원봉사센터에 연일 전화를 걸어 버거데이의 뜻을
전하고, 뜻있는 대구 미리내가게들에게 지금 있는 시간을 모으고 솜씨를 모아 줄 것
을 당부하였다.
주어진 기회만큼 사랑의 마음을 모아 미리내도시락을 만들려고 계획을 했지만
결국은 재정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코로나19의 위협 앞에 속수무책 주저앉아 그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힘겹게 한 달 한 달을 살아 내야하기에 시간 내는 것도 여의치 않지만 결혼 20주년
을 위해 한 푼 두 푼 모아둔 적금이 만기가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마침 날아왔다.
‘한 번의 도시락은 만들 수 있는 마중물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여행경비를 코로나19
의료진 도시락으로 써야겠다고 결정했다. 바로 그때, 서울에 사는 오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구 의료진들과 힘든 대구를 어떻게 도울까? 를 생각하다가
대구미리내 가게 버거데이가 생각났고, 본인이 다니는 믿음의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금하여 보낼테니 도시락을 만들어 의료진들에게 전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연이어
여기저기서 격려의 전화가 왔다. 서울과 제주에 사는 지인들의 후원도 큰 힘이
되었다.

절묘한 시간에 준비 된 재정과 대구미리내가게 사장님들의 솜씨를 더하여 미리내
도시락을 만들었다. 영남대학교 의료원으로 200개를 보내드렸다. 연일 지치고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던 그 긴박한 순간에 힘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후 수성구보건
소로 200개, 코로나19 지정병원 동산의료원으로 20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보낼 수
있도록 전국에서 대구를 응원하는 후원의 손길들이 이어졌다. 어린아이들의 저금통
을 깨어 후원해 주기도 했고,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인 버거데이 고객들이 기꺼이 건내
준 미래내 후원, 생활비를 아껴 전해주신 주부, 초등학교 친구가 이사 가서 대구에
산다고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보내주신 동창회후원, 여러 단체와 개인들의 다양한
사연들로 버거데이의 문을 열어 주었고, 그때마다 대구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하여 더
어렵고 힘겹게 싸우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고
직접 배송했다.
비대면으로 물량이 폭주해서 힘겨운 배송기사님들, 이도저도 아닌 후원이 힘든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노인들, 가가호호 음식물을 치우는 환경관리원들,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시설 이용이 힘든 아동센터, 장애인들에게도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24시간 육아로 지친 영, 유아가 있는 가정에도 사랑과 희망을 담았다.
도시락 한 개 한 개마다 응원의 메시지를 붙여가며 코로나를 이겨나가도록 격려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극심하던 2월부터 후원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버거데이를 운
영하는 동안 한 번, 두 번 이어진 사랑과 희망의 미리내 도시락은 1,000개를 넘겼다.
코로나19가 창궐한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 온다. 도시가 마비되었던 그 때,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그 때, 버거데이는 코로나19의 가장 중심지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했다. 일거리가 없어 넋 놓고 있는 주위의 상인들에게도 함께 도시락을
만들자고 기회를 만들었다. 오히려 더 넉넉한 인건비와 물품비를 지불했다.
이때는 돈을 벌기 위한 때가 아니고, 더 나누어야 하는 때임이 분명했기에 말이다.
모두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위기였지만, 함께여서 살아나는 행복한 기회의 시간
이었다.
아직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만남과 나눔을 요리하는 버거데이 사랑의
도시락 만들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인해 정서적인 빈곤을 호소하는 이웃들을 위해
사랑과 희망을 담아 전달하는 함께의 시간, 友利의 시간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하늘을 향한 꿈, 나만의 이익이 아닌 우리의 유익을 꿈꾸는 버거데이와 함께 해준
따뜻한 이웃들과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 되고 그 때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기를 두 손 모아본다.
1
2020-10-15 16:16:21
올해 설날연휴가 지나고부터 중국 후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2월 중순경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도 첫 확진자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월말에 중국 북경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2월초 여행사에 계약금을 지불한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코로나19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2월에도 해외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공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곤 했습니다.
국내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때만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점점 확산되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에 여행사에 문의를 해보았는데 ‘북경이라서 괜찮다’ 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상황이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족은 북경에 가서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자고 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준비하면서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이번 해외여행은 강원도 홍천에서 군생활한다고 고생한 아들의 군제대를 기념해서 계획한 우리가족의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지 가족모두가 좋아했고, 유난히 아들이 더 좋아했습니다. 코로나19가 지금처럼 대유행 할줄은 단1도 상상하지 못한채...
여행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코로나19는 잠잠해질 줄 모르고 오히려 더 확산되는 추세여서 여행사에 다시 문의를 하니 ‘정부에서 중국여행 금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여행을 취소하게 되면 위약금이 발생합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고, 어떻게 할까 가족들과 상의하던 중에 아내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무리이고, 혹시라도 우리가족이 코로나19 슈퍼전파자가 될 수도 있으니 취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자, 아이들도 ‘엄마말씀에 동의합니다’ 라고 해서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몰랐습니다. 저도 아내랑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즉시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위약금을
물고 계약해지를 했습니다. 계약을 해지한 후에도 계속해서 코로나19는 점점 심해져서 결국 정부에서도 중국여행 금지를 결정하게 되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여행취소 결정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의료진분들은 명절, 휴일을 반납한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만약 여행을 가서 코로나19에 걸렸다면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은 대학 새내기로 캠퍼스 낭만을 꿈꾸며 한창 들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오리엔테이션이 연기되고, 입학도 연기되고, 개강도 계속 연기되더니 결국 대면수업을 하지 못하고, 1학기가 온라인수업으로 대체되어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집에서 하고 있으며, 아들은 제대후 올해
2학기 복학을 준비하면서 자격증 및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서관이 나 학원을 가지 못해서 인터넷강의를 들으면서 집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우리가족에게 일어났습니다. 가족 모두가 외출을 못하고 집에만 있다보니 사소한 일로도 짜증
내고, 말다툼이 자주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가족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이전보다 더 화목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퇴근하고 오면 아내랑 둘이서 저녁을 먹을때가 많았고, 주말저녁이 되어서야 가족모두가 모여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평일저녁과 주말3끼를 함께 먹습니다. 출퇴근 이외에는
저는 외부와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고, 아내랑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외출을 자제시켰던 터라 답답하고 힘들었을텐도 코로나19가 사라질때까지 건강하게 잘 견디자고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는 진정한 가족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뭐했어?’, ‘외출못해서 답답하지?’, ‘복학준비는 잘 돼가?’ ‘온라인수업은 어때?’ 등 평소에 자주 하지 않았던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고, 주말이면 집에서 같이 요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실내자전거도 타고 유튜브를 보면서 요가도 하는 등 예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소중한 시간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지금의 화목한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걱정꺼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우리가족도 다시 예전처럼 각자 바쁜 일상속으로 돌아가야만 해서
지금처럼 같이 식사하고 같이 운동할 시간이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딸은 학교기숙사에 들어가야 해서 떨여져 있어야 하고, 아들은 복학해서
취업준비한다고 바빠서 늦게 귀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족은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고, 비록 같이 식사하고 같이 생활하는
시간으로 이 점점 줄어들겠지만 항상 서로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가 수도권을 제외하고 1단계로 하향조정 되었지만 여전히 2자리수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우리가족은 마스크착용 잘하고, 손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정부방침에 적극 동참하면서 가족여행을 가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절대로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0
2020-10-15 15:20:11
코로나로 인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그리고 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수고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 역시 이 시기에 결혼하여 개인적인 어려움들을 겪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코로나로 인해 삶에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지:1}


먼저는 편부모가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보호자는 생업을 위해 일을 가야하고,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사교육을 받지 못하면 집에 남겨져 있게 됩니다.
지인을 통해 들은 어느 가정의 이야기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은 초등학교 5학년인 맏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유치원생인 동생들을 위해 점심을 해먹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도 넉넉치 않은 형편인데다 맏아이 역시 어른의 보호와 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동생들을 돌보며 밥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틈틈이 빵과 과일과 같이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아이들만 있는 집에 배달 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한달에 한번씩 저희가 이름 붙인 '행복박스'를 만들어 집앞에 배달합니다. '행복박스'에는 과일,시리얼,유제품,라면,즉석식품(에어프라이어용) 등을 담은 것으로 아이들끼리 가스사용으로 위험 요소를 줄이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부모님 없이 해먹을 수 있는 메뉴들을 고민하여 선택합니다. 한박스에 5-7만원 선으로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겠지만 그냥 현금을 보내는 것보다 당장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고 아이들이 이번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이들을 생각하며 장을 보는 일도 귀하고 즐겁습니다,


{이미지:0}

그리고 두번째는 정말 작은 일이지만 병원에서 여러모로 수고하고 계시는 병원 종사자분들에게 커피와 간식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물이나 우유를 바로 따라 취향껏 마실 수 있는 더치커치원액 파우치와 함께 곁들일 간식을 담아 아주 사소하지만 순간의 쉼을 가지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준비한 것입니다. 정말 별 것 아니지만 받으신 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에 저희도 기쁨을 누립니다. 지금은 비록 저희 부부가 협력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만 저희부부는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끼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자는 의지를 다지며 코로나를 함께 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협력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더욱더 적극적인 경제살리기(행복박스)에도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