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4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5 00:20:40
안녕하세요 디자인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중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저는 2학년3반 학급대표로 1년 가까이 겪은 이야기들에 대해 소개해드릴려고 합니다!
특성화고등학교는 2학년때부터 전공수업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장 바쁜학년입니다.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3월달에 배워야 할 프로그램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 1학년때 배운 프로그램 기술을 가지고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처음 화상수업하던 날 한번도 보지못한 친구들과 선생님과 수업하는 시간은 정말 얼.음.장이였던것 같습니다.각자 환경에 따라 인터넷 속도도 달라 대화중에 오류가 생기기도 했고 모두가 처음겪는 일인지라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반해가 지나고 드디어 5월에 등교하던날 처음본 친구들의 얼굴은 모두 마스크로 채워져있었고, 친구들 얼굴들 외우는데 거의 1달정도 걸렸던것 같습니다.이렇게 정신없는 격주가 진행되었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우리반은 더 똘똘 뭉쳤던것같습니다. 먼저 일어나는 친구들이 발열체크 문자를 단톡방에 보내주고, 격주로 진행되는 수업시간에 수행평가 공지를 하는등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전공과제 수행이 있는날이면 밤샘 작업은 필수인데 우리반 친구들은 새벽에도 서로 반 친구들이 힘내자라는 응원문자를 보내고, 졸린 눈으로 학교에서 만나면 언제그랬냐는듯이 전공수업에 열중하는 반 친구들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코로나19는 정말 잊을 수 없는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모두가 힘들지만 지금은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시기인것 같습니다.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열심히 달리는 우리 2학년 3반친구들에게 모두 ‘멋지고,고맙고,수고했다’라는 의미로 사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황 00친구]난 원래도 사람을 잘 외우지 못하는데 마스크때문에 사람을 외우기는 더 힘들었다. 개학하고 몇달 후에도 이 친구가 우리반 친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나였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난 웃을때 눈 주변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편이다. 나와 친하지 않는 친구들은 내 표정만 보고 화났거나 기분이 안좋다고 오해를 했다.전공시간에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내 표정이 몇몇의 오해를 산 것을 알게되었다. 그때 그 친구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친해질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힘든 나날이지만 내가 할수 있는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것라고 생각한다.

[김00 친구]"처음하는 수업방식의 온라인클래스와 구글클래스룸, 화상수업처음 겼는 일에 처음하는 수업이라 새롭고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친구들과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이겨내며 한 시간들이 값진 시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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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00:16:24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 앱에 대한 소개]
◆절약 정보: 사용자가 절약하는 습관을 갖도록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세부기능
-각종 절약 방법(전기, 물 등)에 대한 정보 제공
-재활용에 대한 정보 및 사례 제공
◆코로나 정보: 코로나 19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세부기능
-확진자 현황
-코로나 19에 대한 이슈
-예방법
◆생필품 정보: 사용자가 보유한 생필품 목록을 기록하는 기능
▶세부기능
-생필품 보유 현황에 대한 정보
-다음 달 예상 지출 비용에 대한 정보 제공
◆건강 정보: 건강관리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세부기능
-학생건강상태 조사 사이트 바로 가기 기능
-올바른 손 씻기 방법과 같은 기본 건강 지식 제공
-건강 유지를 위한 간단한 운동 방법 제공

[제작 이야기]
1.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 COVID-19
[국내서 ‘우한 폐렴’ 첫 확진자 발생…중국 국적 여성]
중국에서의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코로나 19 첫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보도를 접했다. 그때는 전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게 와닿지 않았다. 지방에 살았던 나는 이전의 감염병과 같이 금방 지나갈 거라고 방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를 중심으로 내가 사는 경북지역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코앞까지 닥쳐와 우리 동네 사람들까지 위협했다.

“이러다 평생 밖에 못 나가는 거 아니야?”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위기를 직면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 역시 바쁘게 채비를 하여 그 전쟁터 속으로 뛰어드셨다.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무인도에 표류하는 사람처럼 겁에 질린 채 원치 않았던 사회와의 격리를 시작해야만 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는 인생이라는 항해 길에 만난 폭풍우와 같았다.

2.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고리
학생들의 지친 삶을 치유하는 행복한 시간인 방학,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는 편안한 휴식 시간이 아니었다. 뉴스에는 연일 코로나에 관한 속보만을 전했다. 유튜브나 SNS에서도 이슈는 이미 하나로 집중되어있었다. 엄청난 전염성을 경고하는 사람들, 치료제가 없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 걸리면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경고를 전하는 사람들. 긍정적인 사실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이 한순간에 절망에 빠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어머니께서는 시종일관 통장의 숫자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에어컨 자영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가 이번 코로나라는 적은 쉽게 이겨내지 못할 존재임을 가장 잘 아셨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개학연기가 확정됨에 따라 생활비에 대한 고충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경제 사정 악화에 따라 늘어난 어머니의 한숨과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너지기 직전인 아버지의 어깨. 자가격리라는 죄목 하에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바깥세상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동생과 나. 코로나가 만들어낸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고리 속에서 우리 가족이 얻은 건 절망감뿐이었다.

3.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막연히 시간만 허비하던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받는 수업이 그리워졌다. 차라리 놀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방학 따위 얼른 끝나버리길 바랐다. 그때 집에 갇혀 아무것도 못 하는 학생들을 위해 홈스쿨링(Home Schooling) 체제인 ‘온라인 클래스’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에 듣던 전공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으려 하니 낯설게 느껴졌다. 특히 처음 접하게 된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활용한 프로그래밍 수업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삶이 점차 무기력해지면서 이때까지 이뤄온 것들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순간 문득 어머니께서 다 해져가는 바지를 꿰매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한가지 질문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나는 뭘 했지?’

답할 수 없었다.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걸 코로나 탓으로 돌렸던 내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시작된 질문의 끝은 나태해져 버린 자신에 대한 후회와 원망만을 남겼다. 결국, 내 모습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4. 위기의 또 다른 이름, 기회
국내 첫 코로나가 확진자가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각종 사회단체는 물론 개인적으로 코로나 이겨내기에 동참하는 모습들이 TV에서 종종 보였다. 코로나 19와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업 종사자분들을 뒤로 내 주변에서도 마스크 나눔 행사를 주도하거나 민간인 방역 봉사에 동참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를 바라만 보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힘을 보탰다. 게다가 남들과 다른 발상이나 관점으로 코로나 19의 위기로부터 기회를 얻어낸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나 또한, 이제는 주어진 상황에 비판하며 가만히 바라만 보는 미련한 짓 따위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신과 약속했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만큼은 힘이 돼줄 수 있는 뭔가를 하겠어!’

고등학생이라는 나이에 사회적으로 큰일을 이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작은 일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나갔다.
[물 절약하기, 전기 절약하기, 쓰레기 재활용하기, 생필품 아껴 쓰기….]
처음에는 우리 가족의 힘든 경제 사정에 보탬이 될 작은 실천 방안들이 생각났다. 매일 의식하며 지켰어야 할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제대로 실천한 게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길러온 전공 능력으로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안드로이드 앱(Application)을 만들어볼까?’

5. 말보단 행동으로
내 주변 사람 중 대부분은 시종일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기 바쁘다. 그러니 스마트폰 앱에 효율적인 절약 방법이나 코로나에 대한 정보, 건강 소식 등을 담는다면 분명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제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곧바로 프로그래밍 공부에 집중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기에 코딩의 기초가 되는 C언어의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도 비주얼 스튜디오를 이용한 수업에서 프로그램의 심화 응용 및 작성까지 연습했었다. 기억 더듬으며 선급하게 공부하기보다 안드로이드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JAVA의 기초 문법부터 학습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과서의 내용과 더불어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JAVA 문법 서적을 구매했다. 글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유튜브에 공개된 강의를 참고해 시각적인 지식으로 습득했다. 프로그래밍 특성상 배운 내용을 실제로 만들어보며 복습하고,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보충했다.

모든 작업에는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이 JAVA에 대한 기본적인 학습을 마치고 나니 수업 중 몰랐던 부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온라인 클래스에서 배운 내용과 더불어 유튜브에서 필요한 기능에 대한 사용법들을 숙지해나갔다. 프로그래밍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알고리즘 구상이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모두 투자해 논리적 오류가 없도록 아이디어를 조금씩 다듬었다.

그 결과, 효과적인 절약 방법, 코로나에 대한 정보, 보유 생필품 현황, 건강 소식의 4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이라는 앱을 완성했다. 비록 작업 중간에 부족한 전공지식으로 한계에 부딪혔지만, 기존의 방식을 변형한 새로운 활용법으로 해결했다. 제작 기간을 최소화하고, 실용성과 효율에 중점을 두었기에 완성도가 높진 않았지만, 계획했던 동작들은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굳은 의지와 작은 발상들이 내가 원했던 목표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 누구에게나 주어진 동등한 기회
완성한 앱을 가족과 주변 친구들에게 배포했다. 최대한 알차게 구성한 정보들과 최적화된 인터페이스 덕분인지 모두 만족을 표했다. 시중에 배포된 앱들보다 잘난 점은 없었지만, 사용자가 최대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들이 한몫했다. 또한, 사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 개선사항을 파악하고, 주기적으로 보완했다. 가족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앱을 출시해 많은 사람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TV 속 세상에서 접하는 코로나 19와 관련된 선행 얘기는 대단한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든 선행을 베풀고자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다. 나 또한, 비록 경제적인 여유가 없고, 전문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지만, 발상의 전환과 의지만으로 선행을 실천했다.
‘어쩌면 당신도 선행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코로나를 외면하고 있던 게 아닐까?’

아주 작은 실천이었지만, 내가 개발한 앱으로 인해 가족들은 정서적 만족감을 얻었고, 실제로 생활비를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친구들 역시 간편하게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높은 접근성과 복잡한 기능이 없어 최적화되어 있다는 장점 때문에 코로나 앱을 계속 이용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도전할 기회, 남을 도울 기회는 언제나 동등하게 주어진다. 그에 대한 성공 여부는 각자의 마음가짐과 생각에 달렸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기억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무리 작은 선행일지라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대단한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작은 발상에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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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23:19:42
<일상(日常)이 이상(異常)으로...>
2020년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동안 일상적으로 했던 마트가기, 카페에서 커피마시기 등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은 눈치를 보며해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며, 우리 주변 영세 중소기업들도 판로를 찾지 못해 폐업을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업무(미세먼지 배출 관리)와 관련된 중소기업들도 이런 상태가 계속 될 경우 대부분이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담당 업무인 미세먼지 배출 관리를 하던 중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유일한 홍보수단이던 정부 주도의 오프라인 구매상담회가 대부분 취소되며, 제품(굴뚝자동측정기기)을 알릴 수 있는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고 있어, 다수의 기업들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우리가 연결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매자에게 직접 구매자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간단하지만 특정 업체에게 특혜를 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개인정보를 함부로 제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 서비스인 1:1오픈카톡을 이용해서 둘을 연결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양측이 상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理想) 은 실행으로...>
그래서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공공플랫폼에 페이지를 개설하고자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불가" 였습니다. 상담페이지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개발용역을 발주해야하며, 예산이 없어 올해에 수행하기에는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달여의 설득 끝에 운영자로부터 승낙을 받았고, 팀원 모두가 힘을 합쳐 상담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페이지는 만들었으니 파트너를 모집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식적으로 협업 파트너를 모집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행정안전부 보낸 공문을 보게 되었습니다.(협업이음터 : 민간, 공공기관, 정부기관 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협업플랫폼)

“이거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바로 사이트에 협업 파트너 모집글을 업로드했습니다. 한달여의 접수기간 동안 13개의 중소기업이 협업 파트너로 등록해주셨습니다.

<실행은 작은 울림으로..>
이렇게 시작한 비대면 상담페이지는 공공 플랫폼을 통해 전국민 누구나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형태로 개설했으며, 현재 하루 평균 200~500여명이 방문하여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근래 우리가 개발한 비대면 상담페이지를 통해 측정기기 구매문의가 많이 이뤄지고, 중소기업은 점차 활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의 중소기업은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주위에서 네 업무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만 할까? 누가 쓰기나 할까? 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그만하자라는 말을 반복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최근에는 협업 파트너로 참여하고자 하는 중소기업의 문의가 점차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중소기업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아직까지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중계자 역할을 제한적으로 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상담에서부터 계약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One-Stop 서비스로 발전시켜 좀 더 중소기업에게 해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히 어려운 중소기업의 일거리만 늘리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점점 웃음을 찾는 중소기업을 보며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작은 울림이 되고 그 울림들이 모이면, 힘겹겠지만 코로나19도 함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며,

우리 함께 코로나19 극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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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23:17:47
“당분간은 좀 긴장해야겠어. 이렇게 힘들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집을 나서는 남편의 목소리는 신음하는 것처럼 힘이 빠져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쳐져 있지 말고, 어떻게든 버티어봐야지. 다녀오리다.”
마음을 다잡느라 하는 말과는 달리 늘어진 어깨를 보니 마음이 풀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들어서면 바깥일은 풀어놓은 법이 없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다는 말을 할 때면 정말 힘든 것이다. 물론 나도 굳이 남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듣게 되니 걱정부터 앞섰다.
남편은 퇴직한 후 후배들과 팀을 이루어 영상제작 일을 하고 있다. 원래 봄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축제나 행사의 홍보영상을 만드느라 늘 바빴다. 그런데 올 해는 느닷없는 코로나19로 축제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꼼짝없이. 그저 이 위기를 잘 버티어내기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나도 그동안 해오던 일 자리도 코로나19로 쉬고 있으니.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르는 날들을 보내면서 그나마 건강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느닷없이 일상으로 들어온 코로나19. 당황스러움도 잠깐,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통해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처럼, 남편처럼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보면 몸을 잔뜩 움츠리곤 했다. 그리고 귀에 닳도록 듣는 안전수칙을 습관처럼 길들이고 있다. 툭하면 손을 씻고, 어쩌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다른 무엇보다 달라진 일상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으로 집안에서 보내는 것이다. 어쩌다 만나는 친구와의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이웃과의 수다도 뒤로 미루고, 주말이면 가끔 외식하던 식사도 집에서 대신하고. 그러다보니 주부인 내가 좀 바빠졌다.
장을 보는 일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텔레비전을 벗 삼아 닥치는 대로 보고, 하루에 한 번씩 아파트 뒤에 있는 산책로를 걷던 발걸음 대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기고 하고, 거실에 매트를 깔아놓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자칫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 한다는 사실은 공포감으로 엄습해왔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경제적인 부분이 그만큼의 불안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분들은 이번에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겨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어내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경제적이 지원을 해주었고 잠깐의 숨통을 틔워준 것은 실질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나도 코로나19가 주는 경제적인 힘겨움을 버티어내고 있다. 나는 관광업계에서 스토리텔러로 일을 하고 있는데 보통 해가 시작되면 2월부터 일을 한다. 물론 그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활의 한 부분을 채워주어 만족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로 관광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당연히 나도 일이 없어 지금까지 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나 내가 속한 여행사가 잘 버티어내고 있는지 은근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급여는 아니지만 다달이 들어오던 부분이 없어지자 당장 내야 할 세금이나 대출이자 등 내야할 것들은 작은 아이의 도움으로 버티어가고 있는데 다행히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생활비로 대신하고 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이번에 정부에서 소상공인이나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특수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코로나19 긴급지원금도 받아 한 숨 돌리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코로나19는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이겨내야 할 재난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 19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코로나19가 주는 불안함으로 자신을 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보다는 다른 이들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마주하고서는 사랑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지금도 마주한다. 한 번 입으면 벗을 때까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보호복을 입은 채 의자에 늘어져 있던 의료진의 모습을, 의료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느라 코 부분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환하게 웃던 웃음을. 부족한 병상과 의료진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원봉사로 나선 분의 강건함도.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위해 선뜻 나서는 분들의 덕분으로 지금 우리가 코로나19와 맞서나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집안에서 보내야 하는 날들이 주는 답답함도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지금, 늘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봄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언제쯤 코로나19가 끝날지 확실하지 않은 만큼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각자 지켜야 할 방역수칙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로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많은 분들이 전해주는 고운 빛의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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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21:55:44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처음 여주시립도서관에서 문화강의를 하게 된 신규 강사입니다!
본 직업은 아동/청소년 심리상담사입니다! 1:1 개인 상담도 진행하고 있지만, 집단상담이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올해 2월달부터는 모든 집단 상담은 중지되었고, 1:1 개별상담도 3월달에는 아예 하지 못했어요
당연히 공공시설인 도서관 강의도 진행을 하지 못하였구요.
그 시기에 맞벌이 가정에서 생활하는 학령기전 아이들에 대한 걱정, 등교 등 아이들의 돌봄에 관한 뉴스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 발달장애아동을 둔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자살을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항상 많은 걱정과 관심을 쏟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 제가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화상채팅을 통해서라도 만나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때,
여주시립도서관에서 비대면강의를 준비하시고, 몇번의 회의를 거쳐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이 잘 따라와주었고, 반응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정식으로 2020년 하반기 도서관 강의를 진행하기로 하였고, 프로그램 계획서를 제출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래 저는 아동/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만 준비하였었지만,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강의는 어떠한지 담당 주무관님께 의견을 내보았습니다.
주무관님께서는 회의를 한 뒤, 프로그램을 한번 계획해보라고 하셨고, 저는 아동들에 특성에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주로 일반아동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였기때문에, 부담스러울수도 혹은 조심스러울수도 있었을텐데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갑작스런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주셨고, 홍보가 잘 되지 않아 제 기간안에 인원모집이 완료되지 않아 여주시교육청에서도 각 학교 특수학급으로 안내 연락까지 해주며 도움을 주셨습니다.
입으로 입으로 통해서인지, 여주시 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 살고 있는(곧 여주로 이사오신다고 하는~)학부모님께서도 신청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적어도 4~5명 정도의 인원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하여 결국 개설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순간 귀찮을수도, 그냥 안돼요. 라고 짤랐어도 되는 부분이였는데 여주시립도서관(대신도서관)에 감사했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감동받았습니다.

3월 이후 비대면 강의 혹은 개별상담은 철저한 방역과 마스크 착용으로 진행되고, 중간중간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무일 없이 제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국에 있는 어머님/아버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의 걱정보다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니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지지 부탁드립니다.


참고. 프로그램 계획서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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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20:29:24
마이스터고에 진학 중인 마지막 1년을 앞둔 학생들의 이야기다.

2020년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COVID-19, 즉 코로나 탓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뀌기 시작했다. 매년 겨울마다 진행하던 해외연수의 기회가 무산되기 시작하며 마지막 1년 동안 추억이란 상자를 채우기 위한 체육대회나 축제도 물론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대구부터 시작해서 수도권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에서 코로나 감염자 수가 급증했다. 감염자 수의 증가로 인해 교육부에선 등교 중지라는 안타까운 결정까지 나오게 되었다.

인문계에는 수능시험이 있듯이 마이스터고의 궁극적 목표는 "취업"이다. 코로나로 인한 등교 정지와 거리 두기는 학생들이 취업이라는 목표에 가는 길목의 가장 큰 돌이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일정은 계속 변경되기 시작했고 회사의 공채 계획도 없어지거나 미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둘 학생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감 속 새로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 있다.

불안감에 휩싸이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닌 등교 중지가 풀리기 전까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각자의 집에서 전공 공부를 하며 모르는 문제는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를 반복했다. 그 덕인지 무기력하게 시간 때우기가 아닌 각자에게 득이 더 많은 나날이었다. 다행히도 상황이 조금이나마 괜찮아지기 시작하며 고3 학생들은 등교를 다시 시작했다.

등교 후부턴 그동안 쌓아 올린 전공과 선생님, 친구들과의 단합이 뭉쳐져 내리막길에서 눈이 굴러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순 공부만 하며 지(智)만 쌓는 것이 아닌 덕체(德體)도 쌓아갔다. RCY 동아리 학생들은 클린업 스쿨 계획으로 교내 환경을 관리하고 학생회 주도하에 학교 댄스부, 노래부, 밴드부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동락 버스킹부터 시작해서 집에 있을 땐 온라인 게임 대회 개최 등 여러 행사를 거리 두기를 준수하며 덕체를 모두 길렀다. 그 결과, 학생들은 추억이란 상자에 내용을 가득 채우며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 취업이란 뚜껑으로 상자를 보람차게 포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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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9:37:59
“페레야(Mr.Fereya Mesfin)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인력고용소로 향합니다. 오늘은 일자리가 있어야 할텐데.. 집을 떠나면서, 마음은 무거웠지만, 어린나이에 나하나 믿고 시집 온 아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애써 밝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문을 나섰지만... 내 딛는 발걸음은 어쩐지 힘이 없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일자리를 갈구했지만...오늘도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아직 할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세 아이를 생각하니, 오늘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올해로 34세인 페리야씨는 2013년에 결혼하여, 결혼 한지 1년 만에 첫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얼마 전에 출산한 막내까지 포함하여 어느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Yishak이라는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작은 회사에서 12년째 가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시장에 주로 물건을 납품하고 75명을 고용한 작은 회사였지만, 최근 에티오피아 가죽제품이 유럽 등 선진국에서 각광을 받으며 회사 규모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는지라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곧 승진도하고, 월급도 오를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전례 없던 코로나19 전 세계 확산이 장기화 되자, 유럽에서 밀려들어왔던 주문이 하나씩 취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자금의 여유가 없었던 회사는 이내 경영난에 처했고, 결국 공장은 문을 닫고 직원들은 무기한 휴직에 처해졌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인 에티오피아는 실업급여와 같은 체계적인 고용정책이 우리나라와 같이 없습니다.

한달 월급 3800비르(미화로 105불)로 매월 2000비르씩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던 그는, 얼마 전 6살이 된 큰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자 사립학교를 보내 빠듯한 살림은 더 허리를 졸라매야 하던 중이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에서 코로나로 고용을 해고하지 못하도록 임시 법안을 발휘하여 월급이 조금씩 나오고는 있었지만, 이마저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 때 매출없이 월 420만비르씩 인건비를 지급해야 했던 회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당장 소득이 없으면 월세도 못내는 가정형편에 이대로 가족들이 굶주리게 둘 수는 없어, 건설직 일용직 현장에서라도 일을 해보고자 인력고용소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및 대량 실업난으로, 운이 좋아야 3일에 한번 일을 할 수 있을까 말까한 상황에 놓여졌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이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회사가 도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하루 절망에 빠져있던 그 때, 회사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공장으로 출근하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을 닫겠다던 회사에서 다시 출근하라고 하자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곧 다시 일자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 것만 같았습니다. 도산위기 였던 페레야씨 회사에 도대체 어떤 일 생긴 걸 까요?

다시 출근하는 첫날,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으로 수척해졌지만 표정만은 밝은 동료들을 다시 보니, 마음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가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KOICA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장기 침체 시, 에티오피아 증소기업(Micro Small and Medium Enterprise)은 최대 340만명의 실업자가 양산할 수 있다는 UN 보고서를 발표되었습니다. 중소기업은 에티오피아에서 전체 기업의 98%를 차지하고, 약 500만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어 에티오피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KOICA는 중소기업 도산을 막고 대량실업을 방지하기 위해 기발한 프로젝트를 고안하였습니다!

바로, 코로나19로 휴업 또는 도산에 직면해 있는 직물(Textile) 및 가죽(Leather)을 생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즉 멈춰있던 재봉기로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기업은 마스크를 생산/판매하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보존하며, 에티오피아에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마스크를 제공하는 일거 삼득(一擧三得)의 프로젝트였습니다.

마스크 생산을 위한 교육 날, 페레야(Mr.Fereya Mesfin)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고슬고슬 맺힙니다. 처음해보는 일이라, 직원 모두 서툴고 실수도 많지만, 앞날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눈빛만은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그날까지, “Thank you KOICA, Thank you Korea!"

* KOICA 에티오피아 사무소는 1995년 개소하였으며, 현재 에티오피아의 코로나 19 지원을 위하여 포괄적긴급지원프로그램 500만불, 아프리카연합 코로나 지원 500만불 규모의 긴급 지원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위 프로젝트는 포괄적 긴급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77개 기업의 2145명의 일자리를 보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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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9:14:12
2019년 12월 뉴스에서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이어 2020년 1월에 우리나라에도 중국에서 입국한 중국인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위기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유행이 아닌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소소한 감염병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2월 대구에서 발생된 한 종교의 집단감염을 시작으로 국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며 위기경보는 심각으로 상향되었고
WHO에서는 전세계에 팬데믹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계획 되어있던 모든 자원봉사활동관련 사업이 중단되며 지역 내 코로나19 예방 및 대응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자원봉사센터가 그러하듯 우리센터도 우선적으로 소독방역을 준비하였다.
먼저 우리센터는 방역전문업체로부터 소독방역활동에 관한 교육을 수강하였다.
방역에 대한 지식없이 무조건적인 활동은 예방과 대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우리센터는 평소 홀몸어르신, 한부모가정등 우리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을 전개해왔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가장 소독방역이 필요한지 파악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첫 소독 방역활동으로 고령자의 주거율이 높은 구도심중 하나인 노송동의 좁은 골목골목과 선미촌(성매매집결지)에 소독활동을 나섰다.
이곳은 모여있는 업체의 특성상 행정에서나 일반봉사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곳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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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리센터 직원들이 소독방역을 위해 다닐 때에도 주민분들이 의심가득한 눈빛으로 경계하며 문을 열어주거나 말을 건네지 않으셨다.
하지만 한번, 두 번, 세 번... 일회성이 아닌 꾸준하게 이곳의 소독방역을 위해 활동하는 우리 센터의 직원들을 보며 어느샌가 먼저 다가와서는
“고생 많으시네요.”, “이 동네는 오시기 꺼려하는데 찾아주셔서 고맙다.”라며 주머니에서 수줍게 사탕과 야쿠르트를 꺼내어 챙겨주셨다.
우리에겐 그냥 소독약을 한번 뿌리고 닦아내는 소소한 일이지만 그 순간순간이 이분들에게는 코로나19 에서 조금이나마 안심되고 자유로워지는
안심방역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았다.

{이미지:1}
오늘도 우리센터 직원들은 우리 사회의 보호에서 약간은 벗어나있는.. 하지만 소중한 시민들을 위해 방역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골목골목을 찾아나선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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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8:57:36
앓다말 열 감기처럼 금세 지나갈 것이라 믿었던 코로나19는 모두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날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극도로 제한되는 상황 속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히 활동해 온 저희 전주시자원봉사센터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상향된 지금까지,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유례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원봉사자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사람의 따뜻한 힘을 믿으며, 서로 토닥이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8월 여름, 전주시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방호복을 입어야하는 의료진들의 고충에, 전주시민들은 전주시자원봉사센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선별진료소 의료진에게 보낼 냉방 조끼를 기부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선별진료소 의료진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선별진료소 의료진 선생님들께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한편 텀블러 재사용, 일회용품 줄이기 등 그간 환경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해 온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증가한 택배 속 아이스팩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에 힘입어, 시민들의 마음을 아이스팩 조끼와 메시지에 담아 보내는 “안녕! 한 번 더, 보냉♡ 환경 캠페인”이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센터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시작을 알리게 된 캠페인은 인터넷카페 등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온라인 반응과는 다르게,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누군가는 태풍으로 궂은 날씨도 마다 않고, 또 누군가는 방문기부가 어려운 이들의 아이스팩을 모아오는 일을 자처하며 기부해주시길 일주일. 단 일주일 만에 2,400여개의 아이스팩과 마음이 가득담긴 손편지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관심과 응원에 직원 모두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끼에 꼭맞는 아이스팩은 선별진료소로, 크기가 일정치 않은 아이스팩은 명절 대목을 앞둔 재래시장에 전달하기 위해 직원 모두가 팔을 걷고 분류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마침내, 정성스레 모아주신 아이스팩과 응원편지를 한아름 품에 들고 선별진료소와 재래시장을 찾아 시민들의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유치원생, 중학생, 아기엄마, 아파트 입주민, 지역 기업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와 응원을 보내는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던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듯 했습니다. 남은 아이스팩은 전달하기 위해 찾은 재래시장에서는 코로나19로 손님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상인들께서도 대면 거래보다 부쩍 늘어난 택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며, 시민들의 정성과 응원에 참으로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이지만,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따뜻한 마음이 가진 힘과 함께의 가치를 몸소 느낍니다.

불안이 일상이 된 지금 가장 강력한 백신은 서로를 토닥이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안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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