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6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4 10:20:30
안녕하세요. 저는 이천에 살고 있는 김민철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외주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농사 지으신 농산물들을
SNS을 통해 알리고 연결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소농이신데, 농사를 지으셔서 농산물 운반 차로
도매시장으로 올리면 상품에 비해 가격을 제대로 못 받아
인건비도 못 건지는 일이 허다 해서 중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일을 하면서 대가를 받지는 않습니다...)
감자는 20년 정도, 쌀은 5년 정도 이렇게 팔고 있습니다.

저는 자립하지 못한 교회의 목사다 보니
알바도 하고, 주변 분들의 도움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SNS를 통해 주문해 주시는 분들 덕에
생계를 유지해 가고 계시고 있습니다.

1월 말쯤 코로나 19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어려워진 분들의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제안을 드렸습니다.

"엄마, 아버지~ 저희는 그래도 먹는 것은 걱정 안 하니
얼마 안 되지만 주변에 쌀을 좀 나누면 어떨까요?
저도 도움 받으며 사는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버지와 엄마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SNS에 공지했습니다.
그랬더니 금새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당일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11팀에게 쌀을 보냈습니다.

6월이 되었고, 감자를 수확했습니다.
이때도 부모님께 제안을 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지난번에 쌀 보내드린 분들께
감자도 보내드리면 어때요?"

역시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10팀께 감자도 보내드렸습니다.

두 번의 나눔을 통해 받으신 분들 중에서는
감사하다며 인사를 주신 분도 계셨는데,
그 인사를 받으며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시고,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며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19가 길어지고 있고,
언제 종식될지 몰라 참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팍팍해지기 일쑤고,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향해 배려하고,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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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23:32:37
“조심히 다녀와요. 마스크 쓰는 거 잊지 말고, 손소독제 있죠? 수시로 손 닦
는 것도 잊지 말고, 참.......“
“알았어요. 알았어. 다녀오리다.”
아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미리 대답을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머쓱해하는 아내의 웃음에 가슴이 뻐근해져온다. 밖으로 나서자 투명한 햇살에 눈이 시려웠고 한낮의 열기는 몸으로 스며들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가빠지는 숨만큼 답답해졌다. 그래도 좋다. 오늘은 일을 위해 나서는 출근길이기 때문이다. 전철에 올라 비어있는 자리에 몸을 맡긴 후에야 숨을 고를 수 있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갔다.
7년 전, 나는 폴리텍 대학교에 입학했다. 1년 과정으로 나라에서 학비를 대주기 때문에 달리 들어가는 돈이 없다는 특혜를 다행이라 여기며 보석을 가공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1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었다. 쉰다섯의 나이에 신입생으로.
자식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고 가며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꿈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년 과정을 끝내고 찾게 된 곳이 바로 종로에 있는 공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로 3가에 있는 공방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공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곳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스승님으로부터 실전을 익히고, 4년 전부터는 내 손으로 디자인한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판로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그 때만해도 아내는 이불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한 쪽에 작은 진열장을 만들어 그 곳에 내가 완성한 은세공품을 넣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 또한 아내의 제안으로 하게 되었는데 결과도 꽤 좋았다. 무뚝뚝한 나와는 달리 웃음도 밝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내는 이불가게를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었고 단골손님도 꽤 많아 그 몫을 톡톡히 담당해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공방에 매일 출근하는 것은 물론 공방에서 함께 하는 젊은이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며 막연하기만 했던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작년 봄부터는 내가 만든 세공품들을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판매하게 되는 특별한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만의 공방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때가. 그 꿈은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작년 가을에 아내는 대장암 초기로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완치는 되었지만 아직도 걱정이 앞선다. 물론 이불가게도 그만두었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우리의 공방에서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적금도 새로 들어 착실하게 유지해왔다. 집에서 종로3가까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거의 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나는 그 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고, 제2의 삶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으로 보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한 든든함으로 늘 즐거웠다.
올 해 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이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았다. 다른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처음 한동안은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았고 공방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들리는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19는 당장의 삶과 죽음이라는 불안함으로 모든 것들을 정지시켜 버렸고 그 외의 것들은 당연히 감내해야 했다.
다양함으로 늘 분주했던 공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이면 프리마켓을 찾아다니던 은석군은 온라인 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낮에는 회사원으로 저녁이면 공방에서 일하며 투잡을 뛰던 성은양은 무급휴가라며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느라 바쁜 눈치이고, 그러다보니 어쩌다 얼굴을 마주해도 예전처럼 파이팅 넘치는 기운이 없어 안타까워진다.
나 역시 코로나 19로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 주변을 통한 판매와 인사동 갤러리에서 판매를 위한 제품을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공방에서 머무르는 게 일상이었는데 올해는 모임도 힘들고 인사동 거리도 한적해지는 바람에 그저 손을 놓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을 되내이며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다림은 지속되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쓴 마스크는 조금만 걸으면 숨이 답답해져 불편하지만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꼭 쓰고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작은 손세정제를 담고 다니며 수시로 소독하고, 공방에 들어서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덕분에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모두의 건강을 위해 지켜야할 수칙이다.
이렇게 불안한 날을 보내며 대화를 통해 마음을 풀어낸다. 코로나19로 힘듦이 당연해지는 요즘, 가장으로서 어깨가 더 무겁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도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을 힘듦을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인 힘듦을 공방에서 일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하며 기운을 얻는다.
봄이면, 짧은 봄이 사라질 때쯤이면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막연하다. 다행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거의 반 년 동안은 일이 없어 생활을 위해 적금을 해약하는 씁쓸함을 맛보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매일 아파트 뒤에 있는 야트마한 산을 오르내리며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해질 수 있어서.
“이천에 있는 수영언니가 동창회에서 모임 대신 선물하기로 했는데 당신이
만든 은반지로 정했대요. 그리고 경희도 모임에서 기념반지를 맞춘다고 하기에 주말에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공방에 가면 새로운 샘플도 챙겨 와요.“
이번에도 역시 아내의 수더분한 웃음 덕분이다.
이번 코로나19로 나만의, 우리의 공방은 멀어졌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힘듦을 이겨내는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버티어온 것처럼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반드시 예전처럼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함께 하기로 다짐해본다. 채우고 보태고, 나누며 함께 하는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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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23:26:37
“조심히 다녀와요. 마스크 쓰는 거 잊지 말고, 손소독제 있죠? 수시로 손 닦
는 것도 잊지 말고, 참.......“
“알았어요. 알았어. 다녀오리다.”
아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미리 대답을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머쓱해하는 아내의 웃음에 가슴이 뻐근해져온다.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지방근무 발령으로 여기저기 돌아도 별 말이 없었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나에게 맞추느라 드러내기 보다는 속으로 삼키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전폭적인 이해로 품어주고, 경제적으로 힘이 되고 싶다며 10여 년간 이불가게를 하며 나에게 지원군이 되어주고. 그리고 지금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로 함께 하며 안정적인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밖으로 나서자 오전인데도 여름 한낮의 바삭한 햇살에 눈이 시려웠고 그 열기는 몸으로 스며들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가빠지는 숨만큼 답답해졌다. 그래도 좋다. 오늘은 일을 위해 나서는 출근길이기 때문이다. 전철에 올라 비어있는 자리에 몸을 맡긴 후에야 숨을 고를 수 있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갔다.
7년 전, 나는 폴리텍 대학교에 입학했다. 1년 과정으로 나라에서 학비를 대주기 때문에 달리 들어가는 돈이 없다는 특혜를 다행이라 여기며 보석을 가공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1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었다. 쉰다섯의 나이에 신입생으로.
처음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아내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고지식하고 계획적인 성격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한 후, 퇴사할 때까지 한 눈 한 번 팔지 않았다. 정년을 앞두고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로 하는 수순인 지방발령으로 대전에서 광주로, 그러다가 권고사직에 가까운 권유에 힘들어 사표를 내고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에 회계분야를 담당하는 이사로 1년 정도 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을 조심스럽게 꺼내보았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부를 택했다.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아내가 자그마한 이불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생활을 책임질 정도의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회사로부터 되돌아오는 배신감과 허탈감, 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 모든 것들이 죽기보다 힘들어 술잔을 비우는 것으로 털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슬며시 꺼내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미술시간을 좋아했고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도 많이 받아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의 맏이로, 종손으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은근한 압력은 꿈을 꺼내놓지 못하게 했고 결국은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직장생활도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몰리듯 직장을 떠나게 되자 당장의 생활이 막연해 답답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폴리텍 대학이었다. 어쩌면 나는 불안한 미래를 새롭게 열기 위해 잠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고 가며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꿈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년 과정을 끝내고 찾게 된 곳이 바로 종로에 있는 공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로 3가에 있는 공방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공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곳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스승님으로부터 실전을 익히고, 4년 전부터는 내 손으로 디자인한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판로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그 때만해도 아내는 이불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한 쪽에 작은 진열장을 만들어 그 곳에 내가 완성한 은세공품을 넣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 또한 아내의 제안으로 하게 되었는데 결과도 꽤 좋았다. 무뚝뚝한 나와는 달리 웃음도 밝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내는 이불가게를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었고 단골손님도 꽤 많아 그 몫을 톡톡히 담당해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공방에 매일 출근하는 것은 물론 공방에서 함께 하는 젊은이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며 막연하기만 했던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작년 봄부터는 내가 만든 세공품들을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판매하게 되는 특별한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이제 선생님 실력을 세상이 알아주는 거네요,”
“한 턱 내셔야 해요. 점점 바빠지시겠어요. 후후.......”
지금도 기억난다. 공방에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을 때의 벅찬 울림이.......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만의 공방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때가. 그 꿈은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작년 가을에 아내는 대장암 초기로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완치는 되었지만 아직도 걱정이 앞선다. 물론 이불가게도 그만두었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우리의 공방에서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적금도 새로 들어 착실하게 유지해왔다. 집에서 종로3가까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거의 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나는 그 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고, 제2의 삶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으로 보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한 든든함으로 늘 즐거웠다.
올 해 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이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았다. 다른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처음 한동안은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았고 공방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들리는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19는 당장의 삶과 죽음이라는 불안함으로 모든 것들을 정지시켜 버렸고 그 외의 것들은 당연히 감내해야 했다.
다양함으로 늘 분주했던 공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이면 프리마켓을 찾아다니던 은석군은 온라인 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낮에는 회사원으로 저녁이면 공방에서 일하며 투잡을 뛰던 성은양은 무급휴가라며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느라 바쁜 눈치이고, 그러다보니 어쩌다 얼굴을 마주해도 예전처럼 파이팅 넘치는 기운이 없어 안타까워진다.
나 역시 코로나 19로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 주변을 통한 판매와 인사동 갤러리에서 판매를 위한 제품을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공방에서 머무르는 게 일상이었는데 올해는 모임도 힘들고 인사동 거리도 한적해지는 바람에 그저 손을 놓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을 되내이며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다림은 지속되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쓴 마스크는 조금만 걸으면 숨이 답답해져 불편하지만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꼭 쓰고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작은 손세정제를 담고 다니며 수시로 소독하고, 공방에 들어서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덕분에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모두의 건강을 위해 지켜야할 수칙이다.
이렇게 불안한 날을 보내며 대화를 통해 마음을 풀어낸다. 코로나19로 힘듦이 당연해지는 요즘, 가장으로서 어깨가 더 무겁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도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을 힘듦을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인 힘듦을 공방에서 일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하며 기운을 얻는다.
봄이면, 짧은 봄이 사라질 때쯤이면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막연하다. 다행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거의 반 년 동안은 일이 없어 생활을 위해 적금을 해약하는 씁쓸함을 맛보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매일 아파트 뒤에 있는 야트마한 산을 오르내리며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해질 수 있어서.
“이천에 있는 수영언니가 동창회에서 모임 대신 선물하기로 했는데 당신이
만든 은반지로 정했대요. 그리고 경희도 모임에서 기념반지를 맞춘다고 하기에 주말에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공방에 가면 새로운 샘플도 챙겨 와요.“
이번에도 역시 아내의 수더분한 웃음 덕분이다.
이번 코로나19로 나만의, 우리의 공방은 멀어졌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힘듦을 이겨내는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버티어온 것처럼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반드시 예전처럼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함께 하기로 다짐해본다. 채우고 보태고, 나누며 함께 하는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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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20:58:21
인생 2막. 난 지금 사회복지사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보살피는 보육시설장이었고,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전 나는 유치원 교사로 일했었다. 그 때부터 였다. 내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 젊음과 청춘으로도 이기지 못할 격무에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인 나를 보며 노모는 내게 그러다 병난다며 주말에 쉬라고 걱정어린 잔소리를 늘어놓으셨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나는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자기만족감에 취해 봉사활동을 시작했었다.

나의 봉사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어 평생 조금씩 갚아나가야 할 내 삶의 부채 같았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싸우며,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어렵게 살아봤으니 어려운 사정을 알고 아주 큰 도움은 아니라도 내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작게나마 도움을 줘야 마음이 편하고 흐뭇했다. 누구는 그것을 오지랖이라 불렀다.

이런 나의 오지랖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나는 이제 사회복지사이다.
유아교육에 몸 담았던 지난 20여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마땅히 할 게 없어 시작했던 사회복지 공부는 내게 인생2막, 사회복지현장이라는 새로운 삶의 무대를 선물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던 때 진주 지역 내 가장 활발한 sns ‘진주당’ 에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무료방역 봉사활동을 진행한다는 업체의 글을 보고 지인이 귀띔을 해줬다. 그 날은 때마침 휴일이라 늦잠에 취해 있을 법도 했지만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빨리 방역을 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져 감염자가 속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시라도 빨리 일을 진행하여 감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망설임 없이 곧바로 방역봉사자님께 연락을 취하여 진주시 관내 사회복지시설에 방역을 지원할 수 있는지 협의를 했고 그 결과 주로 규모가 크고 감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생활하시는 요양원으로 방역을 하기로 하여 1차 방역계획을 수립하였다. 고맙게도 이렇게 시작된 방역봉사는 서부경남에 있는 다른 지점 대표님들까지 동참을 해주어 요양원 외에도 장애인 시설, 그룹홈 등의 사회복지시설까지 확대 하여 방역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1차 방역활동을 계획하고 나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이 걱정되었다. 그 순간 예전에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할 때 신종플루가 유행하여 구매했던 방역소독기가 생각이 났다. 주위 어린이집에도 상당수가 방역소독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면서 다시한번 일을 벌려보기로 하였다.

진주시어린이집연합회 회원인 원장님들 중 방역봉사자를 모집하여 어린이집 인근 가장 가까운 지역아동센터를 1:1매칭하여 방역봉사를 하도록 하였다. 참가했던 원장님들께서도 내 아이가 생활하는 시설이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응해주셨고, 보람된 일에 함께 할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전해왔다.

연일 언론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더 힘든 삶을 살게 된 취약계층에 대한 소식들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취학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에 40만원의 아동돌봄쿠폰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지역의 인터넷 맘카페에는 이 아동돌봄쿠폰은 제휴 업체에서 사용가능하다며 경쟁하듯 앞다투어 글들이 올라와 호객행위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돈같은 이 쿠폰의 사용후기는 무용담을 털어놓듯 쏟아졌다.

넘쳐나는 돌봄쿠폰의 사용후기 속에 어느 아이 엄마가 아동돌봄쿠폰으로 어려운 학생 가정을 돕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이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겨가면서 덧글을 달았다. 내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연락을 취하고 어떻게 누굴 돕고 싶은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하여 후원자가 원하는 대상자을 선정하였다. 선한 영향력이란게 이런걸까. 그 소식을 들은 맘까페의 다른 아이엄마도 돕고 싶다며 연락이 왔고, 또한 어느 분은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 카드를 기탁해왔다. 이렇게 마련된 후원품으로 관내 교육복지 우선대상 학생 15명에게 학용품 및 생필품을 담은 사랑의 선물상자를 마련하여 지원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 내 수고로움이 더해지긴 했지만 그마저도 내가 할 수 있어 기쁘고 즐거웠다.

내가 살고 있는 진주시에는 코로나19 감염증에 취약한 아동 및 노인들 뿐만아니라 장애인 생활시설 등의 사회복지시설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취약계층 지원도 전년도에 비해 많이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잘해서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한 많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 준수에 적극 협조하여 with코로나시대를 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휴식이 성과가 되는 워라밸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 주어진 일만으로도 벅차다 싶다. 그런데도 이렇게 내가 사서 고생을 하는게 나는 싫지 않다. 더군다나 사회복지사로서의 오지랖 넓은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인 듯 싶다. 오늘날처럼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제 몸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세태가 더 문제라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들의 오지랖이 너무 좁다는 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지랖이 미덕이 될 수 있는 나는 사회복지사이다. 앞으로도 난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이웃을 도우며 겸손한 삶을 청빈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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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20:27:38
안녕하세요.
저희는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있는 판교청소년수련관에서 청소년자원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나래」 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저희는 어린이날을 맞이한 뉴스 기사를 보고 비대면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5월에 보도된 기사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보육시설에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방문이 끊기면서 외출도 못하고 시설에만 있어야 하는 아동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전부터 계속 청소년자원봉사단으로 아동과 청소년에게 봉사활동을 했던 저희는 판교청소년수련관 선생님들과 함께 비대면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계획해서 그룹홈 시설을 돕기로 했습니다. 작년처럼 축제나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 있는 봉사를 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저희는 성남에 있는 그룹홈 시설로 전화를 드려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것이 무엇인지 먼저 여쭤보며 저희가 할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았습니다.
그룹홈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함께 생활중인 아동과 청소년들이 당장 사용하고 먹을 수 있는 학용품, 생필품이 가장 필요하며 옷, 신발, 장난감, 책도 물품 후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역 사람들이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나 그룹홈에게 전달하고 싶은 기부 물품을 받아 전달하는 비대면 봉사를 계획하였고, 물품을 기부하러 오는 사람들과 오래 만날 수 없기에 수련관 주차장을 사용한 드라이브스루로 물품을 받기로 했습니다.
질 좋고 많은 물품이 모였으면 해서 만든 포스터를 저희 페북과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가족들이 사용하지 않거나 기부하고 싶은 물품으로 참여해달라는 홍보를 했고 드라이브스루를 평일과 주말 4일로 열었습니다. 그렇게 총 3,500점 기부 물품이 모아졌고 저희가 다시한번 종류별로 분류하고 소독하고 포장하면서
최대한 깨끗한 물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성남과 용인 그룹홈 16곳에 3,500점 기부 물품이 전달되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잘 사용하고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룹홈 선생님도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를 마쳤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가운데 많은 기부를 해준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며 그렇게 모인 물품이 누군가에게는 잘 사용될 수 있는 봉사였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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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14:57:25
경산에 거주하고 있는 한 평범한 시민입니다. 대구 수성구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한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한할아버지 한분이 보기에도 무거워보이는 소독액통을 등에 지시고는 정류장 방역에 나서신 것이었습니다. 흡사 지게를 지신것처럼 힘겨워보이셨는데 그 무거운 통을 지시고는 허리를 잔뜩 굽히신채 방역에 열중하고 계셨습니다.천천히 그러나 아주 꼼꼼하게 구석구석을 소독하고 계신것이었습니다. 남이 안 볼때는 대충 지나칠수도 있는 구석을 찾아내시어 내일같이 꼼꼼히 소독하신후 유유히 소독액을 다시 채우기 위해 펌프질을 다시 하시는 모습.정류장에 있던 시민들이 응원에 나섰습니다.
아유 할아버지께서 꼼곰히도 하시네.수고해주세요라고.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예민해져 있던 시민들이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화되어 보였습니다.
나역시 마찬가지로 조용히 자리를 비켜드리고 한쪽으로 서있었습니다. 마치 자로잰듯 그러나 일정하게 소독하시는 모습은 전문가못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애국가라도 틀어놓은 듯 숙연한 분위기에 조용해졌습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북적거리던 정류장이 잠시 멈추어 서있었습니다.마치 할아버지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리는듯...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다듬어주시고는 유유히 다음 행선지로 떠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느꼈습니다.
방역에 나서시든 그냥 시민들이든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을 느끼며 뿌듯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우리 마음에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 채워졌습니다.우리 모두의 마음자리일수도 있는 그 정류장을 거쳐간 할아버지의 손길이 따뜻합니다.
.서늘한 가을 날씨에 다들 할아버지에게 손난로하나씩을 건네받은 기분입니다.
버스처럼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에 던져진 위로의 선물. 제각각 정해진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
. 많은 사람들이 그 거리의 온실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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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14:22:15
화도사랑은 11만5천 인구의 화도읍을 기반으로 한 회원수 68,000명의 14년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커뮤니티입니다.
14년동안 우리는 지역 대표 커뮤니티로써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과 슬픔을 언제나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19'바이러스를 만났습니다.
그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코와 입을 마스크로 막았고, 대한민국 곳곳에 경제침체를 비롯하여 생활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도읍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고깃집은 하루 종일 매출이 '0원'이었던날도 부지기수, 많은 사장님들께서 폐업을 고민했습니다.

화도사랑은 이런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는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1.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1탄 - 우리 가게를 홍보합니다>
-> 화도사랑은 원칙적으로 홍보가 불가능하나, 관내 상점 사장님들에게 직접 홍보문구를 받아 대신 홍보해드렸습니다. 총 49업체가 참여해주셨으며, 화도사랑은 매일 1회씩 모든 상점들의 홍보글을 모아 업로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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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2탄 - 화도사랑 쿠폰북>
->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화도사랑 쿠폰북'서비스를 시행했습니다. '0원'인 매출을 조금이라고 늘리기 위한 사장님들의 지원으로 총 37업체가 참여해주셨고, 홍보글과 마찬가지로 쿠폰북도 매일 1회씩 업로드 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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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3탄 - 후원상점 1개월분 환불>
-> 화도사랑에 입점한 후원상점 여러분들의 1개월 회비를 환불해드렸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고통을 함께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4.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4탄 - 후기를 작성하면 굽네치킨이 내 손에!>
-> 관내 업체를 이용하고 후기를 작성해주신분들 중 제일 많은 수의 후기 작성자를 뽑아 다섯분께 굽네치킨 기프티콘을 드렸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얼어붙은 상권을 살리고자 진행한 이벤트이기때문에 후기글 속 상호명, 간판사진, 메뉴판등의 이미지는 모두 노출이 가능하게 열어드렸고 기프티콘의 경우 화도사랑에서 모두 부담하여 진행했습니다.


화도사랑의 이러한 노력은 코로나19로인해 매일을 지옥같이 보내시던 사장님들께 조그만한 빛이 되었으며, 실제로 폐업을 고민하던 사장님께서 덕분에 폐업 마음을 접게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번 자영업자 프로젝트는 몇몇 지역 언론에도 소개되었으며 화도사랑은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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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화도사랑 커뮤니티, "자영업자 살리자!"관내업체 할인쿠폰 발행
최대 30%까지 할인..회비감면 놓고 '사랑의 핑퐁' 도


[남양주=경기인터넷뉴스]남양주시의 대표적인 지역 커뮤니티이자 6만 3천여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화도사랑'이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를 위해 '화도사랑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다.

'화도사랑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란 각 업체에서 직접 작성해준 홍보글 게시, 온라인 쿠폰북 발행, 후원상점 1분기 환불이 주된 내용이다.

화도사랑은 먼저 화도 관내 업체를 대상으로 홍보 신청을 받았다. 이후 약 50업체가 참여하여 직접 꼼꼼하게 홍보글을 작성해줬고, 운영진들이 홍보글을 바탕으로 일 1회씩 모든 업체들을 대신 홍보해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관내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쿠폰북을 제작했다. 업체별로 최대 20%까지 할인을 받을수 있고, 10%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화폐를 활용하면 최대 30%까지 할인되는 효과를 누릴수 있으니 관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화도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분기별로 신청을 받는 후원상점들의 1개월분 회비를 돌려주는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원상점들이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지급해달라'는 등 더 힘든곳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사양했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화도사랑측은 기부처를 찾는 중이다.

회원들의 반응은 '저희들을 위해 힘 써주시는 운영진분들께 감사해요~' 등의 호평이 줄을 잇는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회장 '블루라벨'은 '이전에 없던 어려운 시기에 화도사랑이 자영업자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화도사랑은 관내 음식점 후기를 가장 많이 남긴 회원들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지급할 예정이다. 금번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는 3월 한달간 지속되며, 추가 신청은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 게시판을 참고하면 된다.

한편, 화도사랑은 관내 우수 청소년 장학금 수여, 연말 불우이웃돕기, 시장 및 국회의원 정책간담회 등을 추진해왔으며 올해에도 지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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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14:16:29
화도사랑은 11만5천 인구의 화도읍을 기반으로 한 회원수 68,000명의 14년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커뮤니티입니다.
14년동안 우리는 지역 대표 커뮤니티로써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거움과 슬픔을 언제나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19'바이러스를 만났습니다.
그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코와 입을 마스크로 막았고, 대한민국 곳곳에 경제침체를 비롯하여 생활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도읍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고깃집은 하루 종일 매출이 '0원'이었던날도 부지기수, 많은 사장님들께서 폐업을 고민했습니다.

화도사랑은 이런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는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1.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1탄 - 우리 가게를 홍보합니다>
-> 화도사랑은 원칙적으로 홍보가 불가능하나, 관내 상점 사장님들에게 직접 홍보문구를 받아 대신 홍보해드렸습니다. 총 49업체가 참여해주셨으며, 화도사랑은 매일 1회씩 모든 상점들의 홍보글을 모아 업로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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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2탄 - 화도사랑 쿠폰북>
->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화도사랑 쿠폰북'서비스를 시행했습니다. '0원'인 매출을 조금이라고 늘리기 위한 사장님들의 지원으로 총 37업체가 참여해주셨고, 홍보글과 마찬가지로 쿠폰북도 매일 1회씩 업로드 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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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3탄 - 후원상점 1개월분 환불>
-> 화도사랑에 입점한 후원상점 여러분들의 1개월 회비를 환불해드렸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고통을 함께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4. <화도사랑 자영업자 지원 프로젝트 4탄 - 후기를 작성하면 굽네치킨이 내 손에!>
-> 관내 업체를 이용하고 후기를 작성해주신분들 중 제일 많은 수의 후기 작성자를 뽑아 다섯분께 굽네치킨 기프티콘을 드렸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얼어붙은 상권을 살리고자 진행한 이벤트이기때문에 후기글 속 상호명, 간판사진, 메뉴판등의 이미지는 모두 노출이 가능하게 열어드렸고 기프티콘의 경우 화도사랑에서 모두 부담하여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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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사랑의 이러한 노력은 코로나19로인해 매일을 지옥같이 보내시던 사장님들께 조그만한 빛이 되었으며, 실제로 폐업을 고민하던 사장님께서 덕분에 폐업 마음을 접게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번 자영업자 프로젝트는 몇몇 지역 언론에도 소개되었으며 화도사랑은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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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화도사랑 커뮤니티, "자영업자 살리자!"관내업체 할인쿠폰 발행
최대 30%까지 할인..회비감면 놓고 '사랑의 핑퐁' 도


[남양주=경기인터넷뉴스]남양주시의 대표적인 지역 커뮤니티이자 6만 3천여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화도사랑'이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를 위해 '화도사랑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다.

'화도사랑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란 각 업체에서 직접 작성해준 홍보글 게시, 온라인 쿠폰북 발행, 후원상점 1분기 환불이 주된 내용이다.

화도사랑은 먼저 화도 관내 업체를 대상으로 홍보 신청을 받았다. 이후 약 50업체가 참여하여 직접 꼼꼼하게 홍보글을 작성해줬고, 운영진들이 홍보글을 바탕으로 일 1회씩 모든 업체들을 대신 홍보해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관내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쿠폰북을 제작했다. 업체별로 최대 20%까지 할인을 받을수 있고, 10%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화폐를 활용하면 최대 30%까지 할인되는 효과를 누릴수 있으니 관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화도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분기별로 신청을 받는 후원상점들의 1개월분 회비를 돌려주는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원상점들이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지급해달라'는 등 더 힘든곳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사양했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화도사랑측은 기부처를 찾는 중이다.

회원들의 반응은 '저희들을 위해 힘 써주시는 운영진분들께 감사해요~' 등의 호평이 줄을 잇는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회장 '블루라벨'은 '이전에 없던 어려운 시기에 화도사랑이 자영업자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화도사랑은 관내 음식점 후기를 가장 많이 남긴 회원들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지급할 예정이다. 금번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는 3월 한달간 지속되며, 추가 신청은 '자영업자 살리기 프로젝트' 게시판을 참고하면 된다.

한편, 화도사랑은 관내 우수 청소년 장학금 수여, 연말 불우이웃돕기, 시장 및 국회의원 정책간담회 등을 추진해왔으며 올해에도 지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경기인터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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