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7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09-18 17:34:24
안녕하세요 서울에사는 20대후반의 여성입니다. 가족의 건강을위해서도 아파트 이웃을 배려해서도 최대한 집밖에 외출자제를 최대한 멀리하고있어요. 집에서만 지낸지도 오래되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러가는데 종종 마스크가 흘러져있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마스크에관한 기사를 봅니다. 환경도 주원인이되어 동물들도 위험하다고하네요 방역하시는 분을 생각해서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마스크를 사용하고 쓰레기를 버렸으면합니다. 환경과도 관련있지안을까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부터도 방역을하고있을 애쓰시는 모든 국민과 의료진분들과 이웃과 등등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은 마스크대란때의 생각 때문인지 한번 쓰고 버리기보단 손빨래를 해서사용해서 쓰는걸 추천합니다. 여러개를 사서 몇번을 버리는 것보단 환경의오염도 줄이는겸 또 마스크대란이 밀려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싶습니다. 마스크를 재사용을 권장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안좋다고생각하지만 새 마스크와도 완전한 방역이아니더라도 살기위한 건강과의싸움일까 싶습니다. 마스크는 의무화가아니라 자신의 건강을위해 쓰여진다면 모두가 즐거운 삶을 만끽하는날이올거라 믿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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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11:15:51
나는 1월 13일 공무원으로 임용된 운전직 9급 주무관이다.
공무원이 되기 전 11년 간 육군 보병장교로 근무했다.
군대에서 다양한 훈련을 경험했지만 올해 2,3월만큼 두려움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경험한 청도군 보건소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2월19일 청도군 대남병원에 코로나19 환자가 전국에서 최초로 집단 발생한다.
보건소는 19일부로 폐쇄되었고 동시에 비상 근문가 시작되었다.
보이지 핞은 바이러스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0일 모든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민원인, 기자, 군청실무자, 경북도청, 질병관리본부 등등 정신없이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 벨소리가 전쟁에서 날아오는 총탄과 흡사하다.
개인별, 부서별, 업무는 분장 되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감염병 대응 업무에 모두 정신이 없다.
코로나19 대응 매뉴얼, 업무 참고서는 없다. 우리가 하는것이 매뉴얼이 되고 업무 참고서가 되었다.

병원과 같은 건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보건소 직원들은 접촉자로 분류되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공중보건의사가 방역복을 입고 직원들을 검사 했고, 의사들도 서로 검사를 한다.
감사하게도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 이다. 그러나 잠복기를 고려하여 2주간 격리 및 보건소 폐쇄에 들어갔다.
갑자기 진행된 상황이라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도 식사할 수 있는 식재료도 전무 했고,
음식점은 감염에 대한 부담감으로 배달도 거절했다.
어렵게 구한 컵라면으로 며칠 배고픔을 달랜다.
정문에는 기자들이 약 20명이 대기하고, 직원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모든것이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코로나 19 대응 업무 중 가장 힘든 업무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환자 이송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차량배차, 이송 요원 선정, 병원 선정, 시간 조율 등 준비단계부터 복잡하다.
하계장님은 2,3월 넘쳐나는 이송환자로 인해 하루 100여통 이상의 전화를 받고 업무 조정을 했다.
전화량이 많다 보니 청각에 문제가 생겨 약을 먹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슴이 아프고 감사한 일이다.
현장에서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업무도 중요하지만,
현장을 지원하는 행정 책임자와 실무자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119구급대가 본격적으로 지원되기 전까지 보건소 직원들은 전국으로 환자를 이송했다.
의료 자격증이 있는 직원은 의료진으로, 자격증이 없는 직원은 행정요원으로 업무에 임했다.
이송이 시작되면서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방역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확진자를 돌보는 것은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체력이 소모되었다.
왕복 10시간 소요되는 장거리 이송에 참여한 직원은 확진자와 동승으로
감염의 두려움, 더위, 차량 멀미와 생리현상인 화장실 사용을 스스로 제한하고자
심한 갈증에도 물 한모금 먹지 않고 환자 이송에 참여했다.

정신과 환자 중 확진자 이송은 돌발행동 위험이 추가되어 고도의 긴장감과 집중 관리가 요구되었다.
구급차 이동 중 마스크,방역복을 벗거나 돌발행동 등 의료진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로 인해 동승한 직원이 환자의 방역복을 벗기고 주사를 주었다.

이송하는 날 생일이었던 나의 동기 이주무관의 야기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2월 24일 23시 서울로 확진자를 급하게 이송하는 것이 결정되어
정신없이 방역복을 입고 의료진으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주무관 가족들은 이송업무에 투입된지 모르고 새벽에 생일축하 영상편지를 보낸 것이다.
"영상 편지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솥아지더라." 라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 듣고 있던 직원들도 눈물을 흘렸다.

지금부터는 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운전직으로 방문 보건업무와 구급차를 담당하고 있다.
보건소 배치 이후 의료지원은 다수 있었지만 환자 이송은 2월 20일 대남병원 확진자가 처음이었다.
확진자 이송의 부담감과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20일 오전, 오후 2회 이송이 있었는데 오후 이송은 거동이 불편한 50대 여성 환자였다.
구급차를 병원 정문으로 이동하였더니 기자 20명이 구급차 주변을 둘러싸고 질문한다.
카메라 플레시가 터지고 얼굴 주변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국민들이 보고 있다는 부담감,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정신이 없다.
다만, 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하고 복귀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병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내부로 들어가니 직원들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고 바닥은 축축하고 끈적끈적하다.
이송환자는 내가 봐도 심각한 상태이다.
산소 호흡기가 연결되어 있고, 추운지 온몸에 경련과 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방역복 사이로 보이는 피부 색깔이 시커멓게 보인다.
나와 간호사가 부축해서 이동식 배드로 옮긴 후 부산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없어지고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부산에 도착하고, 환자를 병원 간호사에게 인계한 후 마지막으로 환자에게
"힘내시고 완치 하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니 환자는 말없이 눈을 깜빡인다.

이송을 마치고 보건소 정문에서 방역복을 벗는다.
기자들이 몰려와 마이크를 들이대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 화가난다.
사진 촬영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데 TV 뉴스에 내 모습이 보조 영상으로 나온다.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뉴스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부산으로 이송한 영상은 1주일간 집중적으로 방송되었다.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해 본다.

30대 중반까지 직업군일을 했기 때문에 나의 머리는 항상 짧았다.
전역을 하며 머리를 기르게 되었고, 아내 권유로 파마를 하였다.
처음 파마를 했을 때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한 기억이 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2년간 유지한 파마는 짧은 머리로 돌아갔다.
방역복 입을 때 불편한 부분도 있었고 삐져나온 머리카락에 바이러스가 묻으면 감염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는 훌륭한 미용사다.
이발하는 핑계로 오랜만에 아내의 미용실을 방문했는데 우리 둘뿐 이었다.
서로 마스크를 착용했고 나는 비닐장갑도 착용해서 인지,
현재 우리 모습이 웃겨서 그런지 어색한 웃음 뿐이다.
머리 스타일은 '이태원 클라스' 박서준 머리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냥 웃을 뿐이다.

3월 중순부터 확지자보다 완치자 이송이 늘어났다.
완치자 이송시 보호자가 동반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명의 보호자 중 50대 여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완치된 언니를 집으로 이송하기 위해 충북대학병원까지 함께 이동하면서
코로나19로 힘들었던 부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보건소 직월들이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공감해 주었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 주셨다.
그분은 언니 퇴원 후 며칠 뒤 문어를 삶아서 보건소 전 직원이 먹을 수 있게 보내주었는데
나는 문어를 받은 날도 구급차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이 행복해지는 보람찬 하루였다.

현재 청도는 청청구역으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청도군민과 모든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힘든것이 아니었다.
모든 관계자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서로 격려하며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구급차 담당이기 때문에 이송업무 일부분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작성된 수기도 대부분 그런 내용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우린 다이나믹한 상황을 경험했고, 다양한 사례를 남겼다.
이 모든것을 수기로 작성 할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고생한 직원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묵묵히 코로나19 대응업무는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할수 있다! 이겨 낼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도 고생하시는 모든 의료진과 관련 종사자들에게 감사하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힘찬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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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10:37:30
안녕하세요.
저는 울릉도에 사는 이경주라고 합니다.제 딸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요.얼마전 귀국해서 2주이상의 격리기간을 마치고 울릉도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된것은 유학생 자녀를 두지 않은 많은 국민들께 우리나라 방역이 얼마나 철저하고 까다롭고 확실한지 알리고 이렇게 방역을 위해 애쓰는분들이 있고 또 그것을 지키기위해 애쓰는 입국자들이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입국심사부터도 몇단계에 걸쳐서 진행되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육한 후부터 몇 시간후에나 저는 제 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배를 타고 4시간을 가야하는 울릉도이기에 격리해제 되기전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물론 들어갈 수는 있지만 혹시 만약을 생각해서 저는 제 딸과 포항에 집을 구해서 격리하기로 하였고,그렇게 2주를 보낸후 드디어 울릉도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2주간 어플을 통한 자가진단과 두번의 코로나검사.매일 몇번의 담당공무원의 전화등..철저하게 관리되는 방역에 진짜 대단하다.이렇게 철저한데 입국자들이 거짓말을 하지않는 이상 확산은 절대 없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딸의 음식물 쓰레기조차 버릴 수없어서 냉동실엔 쓰레기만 쌓여갔고 베란다에는 딸의 쓰레기로 쌓여갔습니다.
한여름이라서 냄새와 날파리로 정말 고생했지만..방역을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쯤이야..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매일 전화해서 체크해주시고 휴대폰이 1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다고 수시로 전화해주시고 너무 움직임이 있어도 이유를 묻기위해 전화주시고..엄마인 저에게도 딸의 상태를 체크하고 저의 격리도 관리하는등..
우리도 힘들지만 매일 24시간 상황을 지켜보는 공무원분들도 얼마나 힘들까싶었습니다.
여러분..방역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는 약속같아요!
힘들고 지치지만 우리가 해야합니다.
저는 하던 식당도 뒤로 하고 딸의 격리기간을 위해 집을 떠나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역은 해야하니까요.
다같이 힘들고 다같이 어렵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힘내봐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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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10:53:04
코로나 19가 발병하면서 모든이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버렸습니다.저와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2월5일부터 자원봉사센터에서 면마스크 만들 봉사자를 모집한다기에 지원을 했습니다.18 일동안 재봉틀을 9시부터 5시까지 돌렸지요.그러면서 남편과 제가 시작한게 집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를 하자해 저녁엔 퇴근한 남편이 재단과 다림질 포장을 하고 저는 열심히 박음질을 했습니다.그때는 마스크가 귀했기에 필요로 하는곳이 많았습니다.주민센터.시청에 기부를 하면서 필요한곳에 쓰라고 했고 독거어르신들이나 공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아파트 경비아저씨와 청소하시는 어머님들께 나눠드리고 장애인시설.지인들 참 많이도 만들었고 패션이다쉽게 디자인도 날로 이뻐졌습니다.방송국에서도 집으로 촬영을 왔었지요.두달동안 광주공항에 나가 열체크 봉사를 하면서 격리도 하루 된적이 있습니다.수시로 시설과 지하철역 방역활동을 하면서 제발 코로나19가 물러가라고 빌었습니다.그러다 수해복구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하루하루가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코로나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해야했습니다.지금까지도 수해지역 도배.장판 해주러 다니고 있습니다.방역을 철저히하고 마스크 꼭 착용하고 안전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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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22:03:33
안녕하세요 대전에 한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고3학생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며 방역도우미를 도맡아 친구들의 안전과 방역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분야 기획전문가의 꿈을 갖고 있는 학생으로 요즘 학교를 다니는것뿐만 아니라 마스크도 쓰고 손소독제도 잘뿌리고 열체크도 아침,점심시간에 주기적으로 하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비록 방역 신경쓰랴, 공부 신경쓰랴, 비교과 신경쓰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다른분들 또햐 그런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앎니다. 저는 방역부장으로써 친구들의 방역생활을 강화할수 있게 교내에서 방역팻말 캠페인, '슬기로운 유성방역생활'이라는 주제로 홍보자료를 만들어 주변친구들의 조심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그누구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매우 당연시되고 작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TV매체를 통해 방역에 힘쓰는 사회단체,민간단체,정부의 역할이 빛날정도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학교내에서 방역을 위한 프로그램과 시스템들이 잘 마련되어져 있으면 학생들 또한 열심히 방역에 힘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만약 제 글이 선정되게 된다면 이러한 사실을 정부기관에서 알고 전국 학교로 '방역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감사하다' 란 공문 같은 것을보내주시면 더욱 활력소있는 학교의 방역체계의 운영을 할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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