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대한민국. 이듬해 봄날은 꼭 올거예요.

응모사연
응모자 : 안지미 응모 분야 : 경제살리기 좋아요 : 3개
힘을 내요, 대한민국. 이듬해 봄날은 꼭 올거예요.

아직은 쌀쌀한 날씨면서 이른 봄인 듯 날씨인 2월 중순 코로나가 대구로 퍼져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리 없이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대구에는 밖을 나가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뉴스가 매일 나오고 있었다. 아파트 창밖에는 그렇게 다니던 도로에 있는 자동차들, 도보에 걸어 다니는 행인들, 아파트 내에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코로나도 무서웠지만, 집으로 날라드는 공과금, 카드 명세서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코로나가 금방 물러 날거라며 괜찮다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 형부가 눈에 아른거렸다. 형부는 불과 작년에 동성로에서 음식점을 차렸다. 연말까지만 해도 송년회 손님들과 파티를 여는 손님들로 생기가 넘치던 가게였는데, 2월, 3월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것이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동성로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대구의 상황이 심각함과 이겨내고자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며 노력 하는 것과, 시민들이 집 밖을 최대한 다니지 않는 노력들을 비춰 보여주었다. 이런 역경이 우리에게만 닿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힘이 들었다. 1달, 2달, 3달... 언제 이 팬데믹은 끝나는 걸까? 언제쯤 우리는 이 마스크를 안 쓰고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이렇게 끝없는 걱정이 이어지며, 일상생활이 불안하니까 마음도 불안하고, 기분이 우울 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 하던 형부도, 몇 개월째 팬데믹이 이어지니까 항상 방긋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서 가게나가서 일하기만을 기다리던 듬직하게 올라가있던 어깨가 어느새 축 내려오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연말에 돈을 벌어 놓은 걸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다다른 것 이였다. 
  언니와 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며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손님이 거리에 없는데 홍보를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플랜B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가장 쉽게 코로나 속에서 웃음을 잃지 말자라는, 코로나 이전의 우리 집의 모습으로 돌아 가자를 목표로 삼았다. 집 안에서부터 활력이 난다면, 어느 정도 버텨낼 힘은 생길 거라고 믿었기에 우린 아침에 거실에 모여서 미스터트롯에서 나온 노래 찐이야, 진또배기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춤을 추며 웃음을 되찾으려 노력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 에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고, 이 상황에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자고 취미생활을 가지기로 했다. 이 잠정적인 휴업기간을 이때까지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역발상을 해보는 것이다. 언니는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커스텀 풍선 만들기, 나는 항상 배우고 싶지만, 어렵게 느껴졌던 프로그래밍 언어를 깊게 배우고, 형부는 세계 각국에 유명한 음식점 셰프들의 유튜브 방송을 보며 메뉴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간을 가진 것은 우리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형부가 웃음이 늘기 시작하며, 매번 새로운 요리를 하려는 의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음식점을 열었을 때의 열정이 그의 눈에서 느껴졌다. 매일같이 세계 각국의 요리를 우리에게 선보였는데, 하루는 똠양꿍에 피쉬소스와 여러 가지 소스들을 너무 많이 넣어서 우리가 다 같이 먹다가 이게 무슨 맛이지 하면서 식탁에서 함께 배꼽잡고 웃었던 날이 있었다. 그렇게 요리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마침내 그만의 시그니쳐 메뉴들을 개발해낼 때마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졌었다. 매번 노트에 레시피를 끄적여가며, 같은 메뉴를 수십 번의 시도를 하는 그가 드디어 만들어낸 메뉴를 보니 뿌듯하며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우리의 목표 1단계는 달성했다. 이제는 2단계가 필요했다. 코로나가 서서히 수그러들기 시작하며, 대구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방송이 나오며, 대구시민들이 한 둘씩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게에서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게 테이블 수도 줄이고, 시그니처 메뉴로 손님들을 만족 시켜드리자 라고 2단계 목표를 세웠다. 방역을 매일같이 개점 1시간 전 , 개점 후 2시간 동안 꼼꼼하게 구석구석 하였다. 언니와 나는 몸은 고되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힘들수록, 우리가게에 와주시는 고객분들이 안전하게 밥을 먹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가게에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10월 현재까지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역이 선두에 섰다면, 이제는 형부가 시행착오 끝에 만든 메뉴가 무대를 누렸는데, 그의 피땀눈물이 든 메뉴가 손님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인증을 남기면서 그렇게 언택트 시대에 홍보를 안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유명해져갔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또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형부는 이제 서야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찾은 듯 큰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말하며 웃음을 크게 지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속에서 여전히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감기처럼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팬데믹 속에서 일상생활을 잃어버리니 우울감에 잠식 되어갔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똘똘 뭉쳐서 이겨내는 DNA가 있다.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으로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윤필오가 주도했던 조선시대판 금모으기 운동이 있고, 또한 현대에 들어서 전 세계에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인 1998년 IMF 금모으기 운동으로 약 227톤 금을 모아낸 기적을 이룬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은 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감이 든다. 우선 사람들이 집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가족들끼리 으쌰으쌰 한번 더 자신들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이 팬데믹 상황을 역발상해서 이용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집안에서 웃음이 가득해지면 정신이 행복해져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생겨나 긍정적인 힘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말쯤에는 코로나19가 점점 수그러들어 , 이듬해 봄에는 다 함께 봄맞이를 하면서 웃음이 가득하길 바란다. 힘내세요. 우리의 따스한 정이넘치던 봄날은 꼭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