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3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01 10:18:28
추석 때 고향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정부의 지침이 있었습니다. 저는 고향이 가까워 추석 일주일 전에 인사만 드리고 왔는데 그 때 했던 방역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가급적 고향, 친지 방문을 자제하고 영상통화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추석 당일에는 영상통화로 부모님께 인사드렸습니다.

혹시 다녀온다면 짧게 머무르면서 직계가족만 만나야합니다.
저는 추석 전 주말에 하루만 다녀왔으며 직계인 부모님만 만나고 왔습니다.

가급적 기차, 버스보다는 개인차량을 이용하세요!
저도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이번엔 개인차량으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또한 차량도 타기 전에 소독하고 핸들과 기어를 깨끗이 닦았습니다.

혹시 기차, 버스를 이용한다면 마스크 착용하고 음식 섭취는 자제하세요!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를 벗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고향 집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씻기를 잘해야해요!
저도 도착해서 바로 손씻기를 깨끗이 하고 수시로 손을 씻었습니다. 또한 음식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마스크를 끼고 있었습니다.

식사 시에는 개인 접시, 수저를 사용합니다
저희 가족도 음식은 무조건 개인 접시에 덜어먹고 물컵이나 수저도 개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루 2번 이상 환기하고 소독도 자주 합니다.
저희 가족은 두시간마다 10분씩 창문을 열어두었습니다! 또한 소독약으로 집안 곳곳 소독을 하면서 깨끗한 집안환경을 유지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법들을 지켜서 이번 고향방문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요!

모두들 이렇게 해야 안전하고 행복한 추석을 보낼수있으니 모두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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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18:34:36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의료인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해외 의료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의료 행위는 불가피하였습니다. 봉사활동도 의사, 한의사 선생님과 동행에서 겨우겨우 그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12월경 WHO에서 팬데믹 상황의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알렸습니다.
코로나19는 호흡기의 감염경로로서 아직까지 치료제와 백신제가 발명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바이러스의 정체는 인체의 감염률이 1.7배로 매우 높고, 치명률은 사스보다는 낮지만, 인명에 치명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020년 2월 말 급박한 상황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 안암 병원의 호출을 받아 약 6개월간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역요원과 함께 호흡을 마치고 문자표 및 안내를 내원객에게 도와드렸습니다. 근무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내원객분들은 분위기에 상당히 놀래고 불편한 몸을 가지고 방문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외국인은 진단받은 약품과 약국의 위치를 알려고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호기심과 대견함을 함께 가지고 question 하였습니다.
하루에 5000명 넘게 다녀가는 병원의 내원객에 이리 채이고 혼나고 하면서, 근무자는 숨쉴틈 조차 없었고 마스크 착용은
상당한 압박감과 무게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심리적으로 저를 매우 초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원객과 입원객의 도움과 협조가 없으면 폐쇄가 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방역요원은 냉담하고 찬찬히 근무를 진행하고 있었고, 안암병원의
본 의사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노고와 고생을 응원하였습니다.

다행히 상황은 점차적으로 안정돼어졌고, 1차상황은 조기 마감돼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아직도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관리청으로의 승격은 많은 내원객과 일반인에게 현재의 상황을 인식시켜주기에 충분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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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8:34:09
저희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4동에서 마을공동체 모임을통해 마을주민들과 소통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행복마을지기"단체입니다.
2020년 전세계에 몰아닥친 코로나19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대면활동에대한 제약이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코로나19는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않고, 이싸움에서 저희 공동체팀에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던 중..면마스크를 만들어 마을에서 만들어 마을의 아이들과 어르신들께 나눔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재료비는 마을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기부를 해주시고, 마을의 세탁소와 수선집에서는 공업용 미싱을 빌려주시고, 가정용미싱과 다리미도 삼삼오오 가지고 나오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인터넷에있는 마스크 도안으로 샘플도 여러 디자인으로 만들어보고, 여러주민이 좋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선정하여 2주에 걸쳐 4천장을 만들어 마을의 초등학생.중학생.65세이상의 어르신들께 통장님들봉사로 집집마다 전달해 드렸습니다.
1시간이던 2시간이던 마을주민들이 시간되는대로 짬짬히 나와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분들께는 애쓰신 시간에대한 봉사시간밖에는 드릴것이 없었지만, 참여해주신 주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이렇게 마을은 함꺼 고민하고, 이겨내는 힘이 있습니다.
하안4동 행복마을지기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 이순간이 저는 무척이나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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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5:39:20
코 로나가 찾아온지 어느 덧 반년을 훌쩍 넘은 지금, 이 순간 코로나가 너무 밉기도 하지만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의 가족들과 서
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나누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기에, 몸은 멀어졌어도 마음만큼은 언제
나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생활한지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무딤으로 바뀌어갔고, 친구들과의 연락은 종
일 닿지 않는 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가족들과 그저 그런 평범한 나날들을 서로 나누고,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하루종일 구
구 구 절절 떠들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막연한 이해와 배려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면서 오랜만에
극 적으로 만나고도 그저 핸드폰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그 어색한 틈을 메꾸려고 했습니다. 마음속 공허함을 외면한채 시간을 보내다 발생한 코로나19로
복 잡해지고 더욱더 삭막해진 일상을 마주하면서야, 비로소 혼자있게 되면서 저의 지난 날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다양한 곳의
합 동 활동이 중단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집안에서 혼자 뭘할까 고민하다가 방을 치우기
시 작하면서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닦아내는 도중 우연히 책장 한켠에서 발견하게 된 여러장의 편지지들. 예전에는 하고 싶을 때마다 편지에 적어서 말들을
다 전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 쓰기도, 진솔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미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마음속의
우 울함 감정들은 어쩌면 내가 마음의 거리를 계속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청소를 마친 후에 다시 펜을 들어서 한자 한자 적어내려갔습니다.
리 플레이 되듯 떠오르는 가족들과의 따뜻한 시간들, 친구들과의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들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면서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 하고픈 말을
모 두 적어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친구에게 그 편지들을 전하며 평범했던 일상은 어쩌면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 었을지도 모른다며
두 서 없는 글들로 모든 나의 마음 쏟아내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카톡이나 전화도 있고 좋았지만 편지만이 전할 수 있는 진심이 또 따로 있다고
힘 찬 생각들을 하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낸지 며칠이 지났을까 편지를 받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고, 편지로 답장을 받으면서
내 가 전한 진심이 제대로 전해졌다는 생각에 괜스레 울컥 하기도 하고, 소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우울함이 싹 다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요 즘 같은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편지 주고 받기, 오랜만에 하는터라 익숙치 않은 것도 사실이였고, 하는 도중에 지루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거 짓말처럼 편지를 기다리기도, 문구점에 들어가 편지지를 고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랜만에 쓰고 싶던 펜들도 사면서 제 마음은 이제 막 컵안에
리 필된 커피처럼 따뜻해지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SNS 나 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 것도 좋지만 편지를 쓰는 것도 좋다는걸,
두 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일상 속의 행복을 나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즐거움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기 억속을 더듬어보면 더 자주 볼때는 오히려 더 진심을 전하기 힘들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조직간, 사랑하는 이들간
지 켜야하는 위생규칙, 거리두기 생활수칙들로 물리적인 간격이 멀어져 고충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해 카카오톡 등 온라인 소통으로
키 보드를 두들기고는 있지만 그 허전함은 채울 수 없기에 우울한 나날들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께 어떤 도움이 될까 계속 생각하며 몇날
며 칠을 보낸 결과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결국에 타인이 아닌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면서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은 편지글 속에
마 음을 가득 담아내면서 자연스럽게 내 마음의 공허함도 함께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희망과 따스함을 느끼길 바라며 시작한 저만의 작은 운동
음 악을 들으며 행복한 생각과 함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불철주야 힘써주시는 관공서 여러분께 마음 전하기 ! 작은 쪽지, 그리고 소박한 건강음료로 집
가 까운 곳 이웃들에게 마음을 나누기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가난한 청년이라 큰 선물은 아니였지만 처음 감사함을 나누었을 때 전해지는 그 느낌은
까 만 밤하늘 속에서 발견한 별빛을 보는듯 '아름답고도 황홀한 행복'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행복한 목소리, 반가운 편지를 받았던
이 느낌들과도 같은 그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렵게만 느끼는 따뜻한 공동체는 우리가 전하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평소
하 지 못했던 속마음을 전하고, 때로는 위로를 전하기도 하며 지역과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 억해요 우리 모두 따뜻한 공동체의 시작은 작은 마음들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모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코로나19가 끝나도 잊지 않기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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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3:07:11
안녕하세요. 소상공인으로 올해로 14년째 일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둔 20대딸입니다.
원래 아빠께선 사진관을 하시다가 디지털카메라의 발전으로 적자가 난 상황이 지속되자 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그 이후부터 의류유통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유통업이 마냥 어렵고, 의지할 곳이 많이 없었을텐데도
내색없이 이어오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단골고객님들이 많이 생겨 가끔 재배하신 농작물도 먹어보라고 가져다주시고
정말 감사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2020년도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나날이 늘어나는 확진자수와 반비례하게 매출은 급감소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금방 끝나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의류유통업 특성상 겨울, 봄철에 매출이 좀 나오는 시기였는데 너무나도
심한 매출감소로 인해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께서 '이일을 그만해야 될 때가 아닌가'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름 10년을 넘게 일해오셨는데 매출로 인해 가게를 접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쫌만 버텨보자고.. 금방 나아질 거라고 위로해드렸습니다.

다행히 정부에서 정부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소비가 늘어나자 단골분들이 많이 오셔서 저희 매장의 물건들을 많이 구매해주셨습니다.
한분 한분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손님이 계셨습니다.

60대의 할머니셨는데, 수고한다고 고생한다고 정말 진심으로 말해주셨습니다.
당시, 제가 부모님 가게에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저한테도 존댓말을 써주시면서 손녀같다고 참 기특하다고 하시면서
한참동안 당신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들리셔서 힘내라고 초콜릿도 주시고, 집에서 담근 김치라고 하시면서
반찬거리도 싸오시곤 하셨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너무 감사하지만, 무거운거 들고오시고 멀리까지 오시지 마시라구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근처에 거주하시는 것도 아니였고, 지하철을 타고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거동이 좀 불편하셔서 항상 지하철역까지 데려다드리는데도 마음 한켠이 불편했습니다.

근데 할머니께서는 아들, 딸같아서 그냥 오는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오셔서 계속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오셔서 얼굴을 보고가시는데, 가끔 안오시는 날에는 부모님이나 제가 안부문자를 넣어드리곤 했습니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 부모님께서는 조금만 더 버텨서 일을 해보자고 각오하셨고, 저도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습니다.
그 결과 초기보다는 훨씬 많은 단골손님들께서 꾸준히 찾아오셔서 어느정도 매출회복이 됐고, 정말 할머니께서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단골 한분 한분은 저희에게 매번 수고하신다고 진심으로 말씀해주셨고, 정말 따뜻한 응원으로 다가왔습니다.

만약 할머니께서 그렇게 응원을 해주시지 않았다면 부모님께서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할머니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덕분에 가게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항상 건강하시라고 몇번씩이나 손 붙잡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는 당신이 좋아서 왔는데 뭐가 고맙냐면서 웃으셨습니다.

9월이 되서는 다리가 좀 아파 집밖으로 나오기가 힘드시다고 연락이 와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좀 더 경기가 풀리고 안정이 되면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담은 선물과 식사를 대접해 드려야겠습니다.
2020년도는 여러모로 정말 잊지 못할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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