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5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4 18:52:22
앓다말 열 감기처럼 금세 지나갈 것이라 믿었던 코로나19는 모두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날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극도로 제한되는 상황 속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히 활동해 온 저희 전주시자원봉사센터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상향된 지금까지,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유례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원봉사자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사람의 따뜻한 힘을 믿으며, 서로 토닥이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8월 여름, 전주시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방호복을 입어야하는 의료진들의 고충에, 전주시민들은 전주시자원봉사센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선별진료소 의료진에게 보낼 냉방 조끼를 기부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선별진료소 의료진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선별진료소 의료진 선생님들께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한편 텀블러 재사용, 일회용품 줄이기 등 그간 환경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해 온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증가한 택배 속 아이스팩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에 힘입어, 시민들의 마음을 아이스팩 조끼와 메시지에 담아 보내는 “안녕! 한 번 더, 보냉♡ 환경 캠페인”이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센터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시작을 알리게 된 캠페인은 인터넷카페 등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온라인 반응과는 다르게,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누군가는 태풍으로 궂은 날씨도 마다 않고, 또 누군가는 방문기부가 어려운 이들의 아이스팩을 모아오는 일을 자처하며 기부해주시길 일주일. 단 일주일 만에 2,400여개의 아이스팩과 마음이 가득담긴 손편지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관심과 응원에 직원 모두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끼에 꼭맞는 아이스팩은 선별진료소로, 크기가 일정치 않은 아이스팩은 명절 대목을 앞둔 재래시장에 전달하기 위해 직원 모두가 팔을 걷고 분류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마침내, 정성스레 모아주신 아이스팩과 응원편지를 한아름 품에 들고 선별진료소와 재래시장을 찾아 시민들의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유치원생, 중학생, 아기엄마, 아파트 입주민, 지역 기업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와 응원을 보내는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던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듯 했습니다. 남은 아이스팩은 전달하기 위해 찾은 재래시장에서는 코로나19로 손님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상인들께서도 대면 거래보다 부쩍 늘어난 택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며, 시민들의 정성과 응원에 참으로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이지만,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따뜻한 마음이 가진 힘과 함께의 가치를 몸소 느낍니다.

불안이 일상이 된 지금 가장 강력한 백신은 서로를 토닥이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안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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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8:35:06
1) 계속되는 코로나19, 착한소비 동참
2020년 어느 봄, 느닷없이 창궐한 코로나19 장기화로 연이은 개학연기와 휴원으로, 봄 밥상을 위해 공공급식용으로 납품하고자 했던 전주산 친환경 제철 농산물의 판로가 막혀, 번듯하게 식탁에 오르길 바랐던 자식같은 농산물을 갈아엎을 상황 속에 농부들의 시름은 깊어져 갔습니다.

사단법인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농가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착한 소비에 동참하여 지역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습니다.

2) 친환경 농가도 돕고, 어려운 이웃도 돕고
2020년 4월 사단법인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급식지원이 끊긴 소외된 이웃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연이은 개학연기와 외부활동 자제로 매출이 감소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지역농가의 판로 개척을 통한 소득을 지원하여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밑반찬 나눔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의 협력으로 마련된 밑반찬 나눔행사에는 전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센터직원들이 함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주농부가 정성스레 키워 맛과 영양이 듬뿍 담긴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4찬(열무얼갈이김치, 불고기, 꽈리고추메추리알장조림, 근대무침)을 직접 손질, 조리, 포장작업까지 진행하였습니다.

농부의 피와 땀,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맛있는 친환경 제철 밑반찬들은 포장되어 지역 내 홀몸어르신과 거동이 불편한 이웃 등 400여 세대에 전달되었습니다.

또한 친환경농산물 꾸러미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밑반찬 꾸러미에는 ‘힘내세요 끼니 거르지 마세요’ 응원메시지 카드와 전주시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제작한 수제 면 마스크 400여개를 함께 전달하여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함께 전달하였습니다.

4)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진 따뜻한 나눔

지역사회에서도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진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한 따뜻한 나눔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전주시 유관기관들이 전주지역 친환경 농가를 돕기 위해 발을 벗고 나섰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농가를 위한 농산물 구입, 꾸러미 구입 등 다양한 경제살리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을 나누어 가장 큰 힘을 내고 가진 것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나눔 정신’ 코로나19를 조용히 물러가게 할 신약입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모두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누구도 홀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코로나19를 이겨내는 그 날까지! 안녕! 함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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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7:46:28
KOICA 우간다 사무소와 한인회의 따뜻한 콜라보레이션

동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에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가 예외 없이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럽고 긴박했던 2020년 3월, 그때를 회상해보려 합니다.
우간다 정부는 국경 봉쇄, 공항 폐쇄, 이동제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며 코로나 19를 대응하려고 힘을 썼지만, 보건역량부족으로 정확한 검진 및 확진자 추적이 어려워 속수무책으로 지역감염이 진행되고 있어 우간다 전역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우간다에 거주하고 있는 500여명의 한국 교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뿐만 아니라 아시아인 대상 혐오범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마스크, 손세정제 등 방역 물품들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현상이 발생하여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라 취약계층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 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교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기 위해, 우간다 한인회는 방역마스크를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KOICA 우간다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 하였습니다. 항상 열린 마음, 적극적인 자세로 소통을 중시하는 KOICA 우간다 사무소는 한인회의 요청에 바로 응답하여 사무소에서 교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았고, KOICA 프로젝트로 건립된 은틴다 직업 훈련 학교에서 사용하는 재봉틀과 인력을 한인회에 제공하여 방역 마스크를 제작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제작된 마스크는 우간다 내 교민들 모두에게 제공 되었으며 추가로 마스크를 제작하여 우간다 NEBBI 지역 취약계층에도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교민들은 작지만 따듯한 KOICA 우간다사무소와 한인회의 선물에 힘을 얻어 힘든 시간들을 극복하였고, 현지인들에게는 한국의 따뜻한 정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무서운 배고픔, KOICA 우간다 사무소와 함께 나눠요

유례없는 코로나19 대유행은 취약계층들에게는 더욱더 가혹하게 다가왔습니다. 생계를 겨우 유지 하며 살고 있는 우간다 취약계층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험 보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배고픔을 참아내는 것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와 생존의 위기까지 느꼈으리라 생각 됩니다.
우간다 정부, 국제기구, NGO 등 다양한 기관에서 코로나 19 대응으로 방역물품 지원, 식량 지원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대상 지역이 한정되어있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가며 내일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우간다 연수생 동창회와 KOICA 우간다 사무소가 힘을 합쳤습니다.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을 선정하여 그 지역 노약자, 장애인, 미혼모 등 취약계층 500여명을 대상으로 옥수수 가루, 콩 등 주식으로 이용하는 식재료와 비누를 나누어 주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물품전달을 도와주던 지역 정부 공무원은, 이 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지역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KOICA 우간다 사무소와 우간다 연수생 동창회에게 큰 감사를 표했으며, 코로나 19로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또한 물품을 제공 받은 한 할아버지는 코로나19로 매일매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하며 살았었는데, KOICA 우간다 사무소에서 지원해준 식재료로 당분간은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장기간의 재난 앞에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가뭄의 단비처럼 가장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여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라며 코로나 19 상황을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극복 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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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7:40:42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하여, 비옥한 땅과 선선한 기후로 자연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린다.
코이카 단원은 2020년 3월 21일 대피 전까지 24명이 활동하고 있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관련 뉴스보도를 접하고 단원들안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우간다는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단원 대부분은 본인의 안위보다는 고국의 가족과 지인들을 걱정하였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 확진자 발생, 1월 30일 WHO의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우간다 봉사단원 사이에서 아프리카까지 유행 확산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겼던 코로나 19는 아시아, 남미 등의 유행을 거쳐 점차 서아프리카, 동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코이카는 3월 6일 조기귀국 희망자 접수를 시작으로 우간다 첫 확진자 발생 전, 3월 21일에 24명 활동단원 중 22명을 무사히 출국 시켰다. 항공권 확보 어려움으로 2명이 1일 뒤인 22일에 대피(출국)을 완료했다. 코이카의 발 빠른 안전상황 판단과 우간다 사무소의 세심한 대피 계획으로 단원 전원이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출국 상황에서 빛난 우리 우간다 단원의 ‘같이의 가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피를 시작하기 앞서, 단원들의 심리적 동요를 막기 위해 사무소는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개인 신변 정리, 단원의 수도 이동 경로 확보, 주거지 정리, 대피장소를 철저히 계획하여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대피가 이루어졌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기, 사무소는 사전에 마스크 및 손소독제를 구비하여 지방 단원까지 전원 배포를 하며 감염 예방에 나섰다.
지방에서 수도 이동을 위한 계획 수립에도 가장 먼저, 손소독제 사용과 마스크 착용 당부를 하였으며 단원들은 철저하게 지침을 준수하여 이동했다.
단 한명의 감염이나 유사 증상 없이 무사히 수도 캄팔라까지 대피하였다. 이동 경로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실시간으로 단체 채팅방을 통해 공유하며 안전을 도모했다.
수도에서 대기한지 이틀 만에 출국 일정이 확정 되었다. 그 당시 항공권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단원들 사이에서도 누가 먼저 출국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민감한 시기였지만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시니어 단원들이 오히려 불안해하는 젊은 단원에게 항공권을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사무소에 전달한 사례, 기관 관계자가 헤어짐이 아쉬워 공항 배웅에 동행한 사례, 출국하는 단원들이 출국하며 잔류하는 사무소 직원에게 갖가지 음식을 포장하여 전달하는 모습들은 지금도 감동적이다.
1차 대피 가능인원이 22명으로 확정되고 2명이 후발대로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단원이 출국 순서가 관계없으니 사무소의 임의 배정을 요청했다. 2차 출국 항공권 확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단원이 사무소의 판단력을 믿어줬고 기대에 부응하듯, 곧이어 2차 출국 항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항공권 확보를 위해 사무소 직원, 항권사 지점, 여행사 직원 등 10여명이 밤잠을 마다하고 발권을 진행했다.
아프리카는 코로나19 외에도 귀국 후 말라리아 발병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사무소는 단원의 안전한 출국 외에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말라리아 진단 키트, 말라리아 상비약 등을 개인별로 지급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한국에 도착하여 많은 기관에서 대피를 진행한 상황을 언론을 통해 접한 뒤, 감사한 마음과 함께 침착하게 대피 일정을 동행해준 동료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사회 감염 방지를 위해 코이카는 자택 내 자가격리가 어려운 단원 대상으로 시설을 제공하는 등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코이카와 단원이 하나가 되어 ‘같이의 가치’를 계속해서 실현하고 있었다.
올해는 임지로 복귀가 어려워 코이카 규정에 따라 국내 복귀 90일 이후 계약종료가 진행되었다. 종료에 따라 우간다에 두고 온 개인 짐을 한국의 개인 주거지로 보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각지에 흩어진 단원의 개인 짐을 사무소 직원이 직접 방문하여 포장을 하고 내용물을 확인하여 발송한 것이다.
자칫 당연한 일들로 볼 수 있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원의 주거지를 방문하여 화물을 수거하고 포장하여 종료 이후까지 완벽하게 대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훼손된 화물도 있었고 또는 발송이 불가한 품목이 다수 있었다. 최대한 단원 개인의 물건을 발송하기 위해 개인별 내역을 확인하고 포장하여 개인 주거지까지 짐을 보내준 것을 보고 무한 감동을 느꼈다.
최근 현지 기관의 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코이카에서 교사 대상으로 방역용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소에 연락해 보니, 방역 및 감염 예방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소재 교육기관 교사를 대상으로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지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마스크는 단원 활동으로 지원했던 여성 소외계층 커뮤니티에서 생산한 마스크를 공정가격에 구입하여 어려움에 처한 기관 관계자에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럽게 임지를 떠난 단원들은 본인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사무소가 계속적으로 봉사단 활동기관과 수혜자들에게 사후관리 차원의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에 안도와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코이카가 단원 및 기관에 책임을 다하는 태도에 큰 감동을 했고,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코이카 봉사단 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국위선양의 기회를 얻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총 47개국 개발협력 현장에서 코로나 19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근무를 이어나가는 코이카 직원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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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5:33:13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3
2020-10-14 15:25:25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구에 살고있는 쌍둥이네 집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1
2020-10-14 15:21:57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구에 살고있는 쌍둥이네 집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2
2020-10-14 15:17:47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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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4:43:33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3학년 학생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에 많은 친구들과 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노래방이나 PC방도 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친구들과 동생들이 마음놓고 학교에 와서 활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솔선 수범해서 선생님들을 도와 학교와 교실을 방역해보기로 결심 했습니다. 전교생이 700명이 넘는 학교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고, 교실에서는 매 시간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을 도와 학교 방역을 돕기로 결심하고, 매 시간 교실 환기를 담당해 교실 창문을 열고, 교실과 책상을 소독제를 뿌리고 닦는 봉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교실을 닦는 봉사활동이 힘들었지만 계속 하다보니 익숙해 졌고, 무엇보다 선생님들과 다른 친구들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 스러웠습니다.

또 친구들 중에는 교실의 향균 필름을 훼손해 책상의 방역이 제대로 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훼손된 책상을 발견할때마다 보수 테이프를 붙여 향균필름을 보수해 주었고, 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본 다른 친구들은 더 이상 향균 필름을 찢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돕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제 행동으로 모두가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등교수업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3주마다 1주씩 학교를 나가게 되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답답 했습니다.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역시 모르는 것을 바로 질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학교에 빨리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에 힘쓰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학교를 나가지 않는 동안 친구들과 단톡방과 페이스북에 마스크를 꼭 쓸것과 손을 깨끗이 씻고 PC방과 노래방등에 가지 않을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생활 속 방역이 사회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고 믿으며 묵묵히 글을 올려 나갔습니다.

학교에 등교해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체온을 측정해서 체온이 높게 나온 친구를 격리하는 봉사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한 명의 친구가 코로나19 의심증상이 발생하면 모든 친구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체온 측정 봉사를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바뀌는게 많지 않을지 모릅니다. 저 혼자만의 힘이 미약할지도 모르나 한명 한명의 움직임이 사회 전체를 지키는 방역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 저희 지역 주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지만 저희 학교에서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나 혼자만의 아우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코로나19를 막기위한 방역에 적극적으로 나서 학교에 나가 소중한 제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319
2020-10-14 12:25:52
아직은 쌀쌀한 날씨면서 이른 봄인 듯 날씨인 2월 중순 코로나가 대구로 퍼져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리 없이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대구에는 밖을 나가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뉴스가 매일 나오고 있었다. 아파트 창밖에는 그렇게 다니던 도로에 있는 자동차들, 도보에 걸어 다니는 행인들, 아파트 내에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코로나도 무서웠지만, 집으로 날라드는 공과금, 카드 명세서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코로나가 금방 물러 날거라며 괜찮다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 형부가 눈에 아른거렸다. 형부는 불과 작년에 동성로에서 음식점을 차렸다. 연말까지만 해도 송년회 손님들과 파티를 여는 손님들로 생기가 넘치던 가게였는데, 2월, 3월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것이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동성로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대구의 상황이 심각함과 이겨내고자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며 노력 하는 것과, 시민들이 집 밖을 최대한 다니지 않는 노력들을 비춰 보여주었다. 이런 역경이 우리에게만 닿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힘이 들었다. 1달, 2달, 3달... 언제 이 팬데믹은 끝나는 걸까? 언제쯤 우리는 이 마스크를 안 쓰고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이렇게 끝없는 걱정이 이어지며, 일상생활이 불안하니까 마음도 불안하고, 기분이 우울 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 하던 형부도, 몇 개월째 팬데믹이 이어지니까 항상 방긋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서 가게나가서 일하기만을 기다리던 듬직하게 올라가있던 어깨가 어느새 축 내려오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연말에 돈을 벌어 놓은 걸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다다른 것 이였다.
언니와 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며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손님이 거리에 없는데 홍보를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플랜B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가장 쉽게 코로나 속에서 웃음을 잃지 말자라는, 코로나 이전의 우리 집의 모습으로 돌아 가자를 목표로 삼았다. 집 안에서부터 활력이 난다면, 어느 정도 버텨낼 힘은 생길 거라고 믿었기에 우린 아침에 거실에 모여서 미스터트롯에서 나온 노래 찐이야, 진또배기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춤을 추며 웃음을 되찾으려 노력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 에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고, 이 상황에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자고 취미생활을 가지기로 했다. 이 잠정적인 휴업기간을 이때까지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역발상을 해보는 것이다. 언니는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커스텀 풍선 만들기, 나는 항상 배우고 싶지만, 어렵게 느껴졌던 프로그래밍 언어를 깊게 배우고, 형부는 세계 각국에 유명한 음식점 셰프들의 유튜브 방송을 보며 메뉴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간을 가진 것은 우리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형부가 웃음이 늘기 시작하며, 매번 새로운 요리를 하려는 의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음식점을 열었을 때의 열정이 그의 눈에서 느껴졌다. 매일같이 세계 각국의 요리를 우리에게 선보였는데, 하루는 똠양꿍에 피쉬소스와 여러 가지 소스들을 너무 많이 넣어서 우리가 다 같이 먹다가 이게 무슨 맛이지 하면서 식탁에서 함께 배꼽잡고 웃었던 날이 있었다. 그렇게 요리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마침내 그만의 시그니쳐 메뉴들을 개발해낼 때마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졌었다. 매번 노트에 레시피를 끄적여가며, 같은 메뉴를 수십 번의 시도를 하는 그가 드디어 만들어낸 메뉴를 보니 뿌듯하며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우리의 목표 1단계는 달성했다. 이제는 2단계가 필요했다. 코로나가 서서히 수그러들기 시작하며, 대구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방송이 나오며, 대구시민들이 한 둘씩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게에서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게 테이블 수도 줄이고, 시그니처 메뉴로 손님들을 만족 시켜드리자 라고 2단계 목표를 세웠다. 방역을 매일같이 개점 1시간 전 , 개점 후 2시간 동안 꼼꼼하게 구석구석 하였다. 언니와 나는 몸은 고되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힘들수록, 우리가게에 와주시는 고객분들이 안전하게 밥을 먹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가게에는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10월 현재까지 운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역이 선두에 섰다면, 이제는 형부가 시행착오 끝에 만든 메뉴가 무대를 누렸는데, 그의 피땀눈물이 든 메뉴가 손님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인증을 남기면서 그렇게 언택트 시대에 홍보를 안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유명해져갔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또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형부는 이제 서야 원래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찾은 듯 큰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말하며 웃음을 크게 지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속에서 여전히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감기처럼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팬데믹 속에서 일상생활을 잃어버리니 우울감에 잠식 되어갔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똘똘 뭉쳐서 이겨내는 DNA가 있다.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으로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윤필오가 주도했던 조선시대판 금모으기 운동이 있고, 또한 현대에 들어서 전 세계에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인 1998년 IMF 금모으기 운동으로 약 227톤 금을 모아낸 기적을 이룬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은 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감이 든다. 우선 사람들이 집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가족들끼리 으쌰으쌰 한번 더 자신들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이 팬데믹 상황을 역발상해서 이용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집안에서 웃음이 가득해지면 정신이 행복해져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생겨나 긍정적인 힘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말쯤에는 코로나19가 점점 수그러들어 , 이듬해 봄에는 다 함께 봄맞이를 하면서 웃음이 가득하길 바란다. 힘내세요. 우리의 따스한 정이넘치던 봄날은 꼭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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