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감동사례 공모전 응모하기 1 페이지 > 코로나19 극복 감동 사례 공모전

2020-10-15 18:13:18
안녕하세요?
어느날 예고없이 전세계적으로 찾아온 코로나 19~.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도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이로인해 많은 인명피해도 발생을 하고 모든 국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초래 할 뿐만아니라, 경제활동도 위축되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어요. 특히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하루하루 일터에 다니는 서민들에게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마저 일거리가 줄어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는 실정이죠.
우리는 현재 국민모두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나 국민 각 개인이 건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지만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있는 이웃에게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제 개인 SNS를 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보람된 일을 하고 있어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정보화 시대에 모두들 개인 SNS를 하고 있는데 아주 간단한 기부방법으로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느날 눈에 들어온 사연하나.
그들에겐 너무잔인한 코로나19!
늘 밤샘작업을 나가시는 엄마와 오빠와 함께 사는 11살 유진(가명). 이혼한 아빠가 양육비를 주지않아서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야간일을 나가며 낮에는 잠을 자야 해요.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일거리가 줄어들어 생계마져 어려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유진이는 그런줄도 모르고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마냥좋아 한대요.
한숨만 늘어가는 엄마. 유진이와 오빠, 엄마, 이 세 식구의 소원은 지극히 평범한 모두 함께 모여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애처로운 사연을 보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다가 제가 실천한 작지만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
그게 뭐냐구요?
바로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글을 작성할때나 웹서핑을 통해 나도모르게 쉽게생기는 해피빈 콩! 조금씩 쌓여가는 해피빈콩! 이게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기부방법이에요.
해피빈 콩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소멸되기전에 기부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요~!
제가 모바일에서 발견한 해피빈 기부콩!
그동안 하나하나쌓인 기부콩이 8,900원이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이렇게 어려운 가정들에게 바로 기부를 했어요. 이렇게 모은 기부금액이 벌써 5백여만원이 되고있었네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후원 선행을 베풀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기부를 하고 나니 유진이네 처럼어려운 이웃이 조금이나마 생활에 보템이되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해피빈 콩 기부를 통해 어려운 가정을 지원한다면, 각 가정에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 있지않을까요?. 코로나19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 이 위기를 넘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실천으로 코로나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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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8:01:37
춘천엔 세탁소가 150여 곳 넘게 있는데 협회에 가입한 업소는 43개 정도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중순 코로나 19 위기 방역대처 일환으로 자원봉사 센터에서 마스크 제작을 진행 중이었는데 세탁협회 지부장이라며 우리도 마스크 제작에 동참케 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반가움에 다음 날 가게로 직접 찾아 가 뵈었는데 가게는 낡은데다 좁고 열악해서 앉을 공간도 없어 서서 얘기하면서 차마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마스크제작 함께해주시겠다는 말씀만 감사히 받겠다면서 자원봉사자와 각 단체의 협조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저희들끼리 만들 수 있다고 정중히 말씀 드렸더니, ‘그건 아니다 내가 확인 해 보니 자기 집에 재봉틀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스크 제작에 참여한 봉사자 분들이 많다는데 재봉틀로 먹고사는 우리가 이 기회에 봉사하지 않으면 언제 봉사 하겠냐‘ 며 2,000장 정도의 재료를 요청해서 드렸다. 드리면서 지부장님 혼자서 가게 일도 하고 본업의 일도 바쁘니 세탁업소 알려주시면 우리가 나눠주고 다 되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다 받으셨다.
마스크제작은 2주 만에 완성해서 가져왔는데, 15개 업체가 참여했고 일과 후 밤늦게 만들었다는데 깔끔한 재봉에 다림질까지 해서 다른 봉사자분들이 만든 것보다 나을 뿐 아니라 구매상품 못지않게 좋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잘 만들어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혼자 먹고살기 바빴는데 재봉틀로 남을 돕고, 받는 분이 좋아 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너무 큰 보람과 행복을 맛봤다며 오히려 동참토록 해준 센터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 참여했던 협회 업소가 자원봉사 단체 등록을 했고 지금은 행정복지센터와 협조하여 거동이 불편한 홀몸어르신 가정의 이불세탁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전화 드렸더니 봉사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함께 사는 이웃 공동체와 같이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봉사 할 일 있음 저희에게 먼저 연락 주라고 말하는 전화 말속 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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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50:25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벌서 오늘 "하남 사랑의 콜센터" 운영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 자원봉사 단체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라며 생각했던 하남 사랑의 콜센터 운영?
우리는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사무실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있을때
자원봉사하는 회원 중에 상담 자격증을 가진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으나
3개월간 콜센터 장소 마련과 운영비 마련하기가 어려울때
소식을 듣고 콜센터 장소 후원과 운영 비용을 만들 수 있는 하남시도시공사 공모사업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되어
공모전에 참가하여 선정되 콜센터를 운영하게된 사연입니다.
장소는 하남시 황산에 샘치과 원장님이 병원 한쪽에 공간을 내어주시고, 비용은 공모사업으로 마련하고
운영과 홍보는 하남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김춘자 회장) 소속단체에서 28명의 회장이 2인 1조로 월, 수, 금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 상담 내용은 코로나19로 인한 건강상담, 노인상담, 청소년상담, 진로진학상담을 하였습니다.
6월15일 개소하여 10월15일 까지 매주 3회식 운영된 코로나19 극복 하남사랑의콜센터 운영 자원봉사는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 달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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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47:57
|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글로벌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개발협력 대표기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KOICA)입니다.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는 벌써 10개월간 지속되며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전 세계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는 코이카에게 코로나19는 사업전반, 조직운영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몰고왔습니다. 특히 44개국에 100여명의 직원과 1500명에 가까운 봉사단원 등 우리 국민을 파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초기부터 그 위험성을 주목하고 긴밀하게 움직여 나갔습니다.

| 코이카, 코로나 펜데믹과 락다운(Lock-down)으로 위기를 맞다

작년 말 시작된 코로나19는 폭발적인 전파력을 보이며 순식간에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중남미,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2월 중순, 신천지 사태로 인해 한국의 확진자가 급증할 때까지만 해도, 해외사무소에 있는 인력들이 한국에 있는 동료와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해주 었습니다. 그러나, 3월 전 세계 확진자가 약 20만 명으로 늘어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펜데믹 선언을 하게 되면서부터 개도국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코이카는 인력을 파견한 5개국(태국, 베트남, 네팔 등)으로 확진자 발생 국가가 확대되던 1월 28일, 안전대책위원회를 가동하였습니다. 파견국가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나갔으며, WHO의 펜데믹 선언 즉시 44개국 전체 파견인력의 본국 귀국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각국의 지역이동금지 및 공항 폐쇄 조치로 인하여 파견인력의 한국 귀국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개도국에 파견된 봉사단원들은 수도 만이 아니라 개도국 지방 곳곳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고, 갑작스런 개도국내 지방간 이동 금지령, 국경 봉쇄령 등은 우리 봉사단원들과 교민들의 발을 묶어버리는 상황까지 되어버렸습니다.

구체 사례로, 페루는 중남미 전역으로 코로나가 확산됨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갑작스럽게 고립된 봉사단원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협뿐만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혐오 공격이 증가하면서 안전에 크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코이카의 파견인력 긴급이송 계획도 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상상황 속에서 코이카 페루사무소는 외교부, 주페루대사관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페루의 군, 경찰, 외교 루트를 전방위로 활용해 이동봉쇄 조치 해제와 이동에 관한 경찰지원을 요청, 버스 7대를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피우라, 따끄나 등 수도에서 무려 1천 킬로가 넘는 지역을 1박 2일 동안 버스로 달리며, 단원 한 명 한 명씩 픽업, 수도 리마에 안전하게 후송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지의 열악한 통신 환경 속에서 마치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현지의 도움을 얻어 코이카 단원들은 물론 우리 국민 20명도 추가로 이송했습니다.

페루와 마찬가지로 현지 이동이 락다운된 카메룬에서도 단원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불확실성과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지방단원까지 모두 수도에 어렵게 집결시키고, 수도를 출발하는 항공권을 어렵게 확보해놓았으나, 카메룬 정부의 갑작스러운 육해동 모든 국경 봉쇄조치에 사무소는 단원들을 귀국시킬 수단으로 전세기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이카 사무소로서 전세기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카메룬 대사관과 협력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살림살이도 챙기지 못한 채 살던 지역을 떠나 수도에 모인 단원들의 심리적 안정, 신체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단원들은 사무소에서 도보 10분 이내, 차량 3분 이내 거리의 숙소에 머물도록 하고, 식료품은 단원들의 신청을 받아 사무소 직원이 대신 장을 봐주었으며, 단원들에게 읽을 책을 빌려주고 반납 시에는 소독하여 사무소 서가에 진열하였습니다. 이렇게 장기화에 대비하는 가운데, 사무소는 임시항공편(전세기) 확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카메룬은 단원과 교민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임시항공편을 위한 인원 확보를 위해 우리처럼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 일본 자이카(JICA)와 협조키로 하였습니다. 인원 확보는 되었지만 전세기로 활용할 에티오피아 대형 항공기의 도쿄 착륙허가 발급(인천을 거쳐 도쿄까지 가는 경로였으므로)받고, 정기항공권이 아님에 따라 현금이나 카드결제가 아닌 뉴욕 에티오피아항공사 계좌로 항공권 구매비용 송금이 필요한데 카메룬 정부가 모든 국제송금을 막는 등 여러 가지 장애를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모든 사무소, 대사관 직원이 밤낮없이 뛰어다닌 끝에 무사히 우리 단원과 교민, 그리고 일본 단원과 그 가족 등 96명이 모두 안전하게 서울, 도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글로벌 협력 모델을 제시하다

과거에 있었던 사스(SARS), 에볼라(EBOLA) 같은 감염병에서 선진국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선진국에서도 심각하게 타격을 입으면서 개발도상국과의 협력고리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자국 중심주의도 팽배해졌었습니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위기가 닥치면 항상 아래로부터 붕괴가 시작됩니다. 소득계층의 최하위 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빈곤국가와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컸습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감염병으로 죽으나, 굻어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고 슬프게 말합니다. 코이카는 코로나19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개발도상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식량, 보건, 의료 지원에 중심을 두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중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례 1) 코이카, 코로나19 위기 속 코이카가 필리핀에 구축한 현지 유통망 활용해 식량 지원

필리핀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역 봉쇄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도시빈민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생활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식료품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닐라에만 약 65만 가구가 빈민 가정으로 필리핀 정부가 긴급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체의 25%에 불가해 많은 인원들이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코이카는 단순 지원 뿐아니라 기존에 코이카가 구축해준 농업 인프라를 활용해 코로나19 극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코이카는 10년 전부터 농촌개발사업으로 필리핀 파나이섬에 작물재배, 미곡종합처리장, 농산물 유통시설 등 인프라를 지원하고, 현지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해왔습니다. 이 결과, 주요 작물 평균 생산율이 100% 증가하고 농가 연평균 소득이 74% 높아지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또한 농민협동조합과 미곡종합처리장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시 빈민 3만 3천여 가구, 17만 명에게 쌀 200톤의 식량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지원은 코이카의 도움으로 필리핀에서 자체 생산한 쌀을 필리핀 내에 도시 빈민을 위해 직접 공급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글로벌 협력 모델을 보여준 것으로써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롤란도 바우티스타 필리핀 사회복지개발부 장관은 “한국정부의 미곡 긴급지원은 17만여 명의 도시빈민을 포함한 취약계층들의 생존을 돕는데 긴요하게 활용될 것입니다”며 “코로나19가 경제사회를 황폐화시키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한국 정부와 코이카, 한국민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사례2) 코이카가 개발도상국에 지원한 병원, 코로나19 대응 일선에

또한 코이카는 직접적으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개도국의 의료 역량 개발에도 힘써 왔습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개발도상국 일부는 전문 의료진과 시설이 현저하게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코이카는 기존에 지원해 준 의료시설을 활용해 개도국 현지코로나19 대응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코이카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건립해 최근까지 관리, 지원하고 있는 병원은 110여 개 곳입니다. 이 가운데 네팔, 페루, 팔레스타인 등에 건립한 15개의 의료시설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어, 코로나19 긴급 대응에 활용되었습니다. 아울러 이들 병원에는 추가적으로 진단키트와 의료장비, 의약품을 지원하여 힘을 보태었습니다. 집중치료시설과 산소공급장치, 격리 병동 등이 필요한 코로나19 특성상, 현대식 병원의 존재와 의약품 지원은 개발도상국에서 사막의 우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의료시설뿐만이 아니라 코이카가 ‘글로벌보건안보구상’에 따라 양성한 캄보디아와 가나, 우즈베키스탄 등 현지 역학조사관들이 감염병 저지에 큰 역할을 한 점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가나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코이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중급 현장역학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FETP) 프로그램을 졸업한 15명 중 14명은 현지의 감염병 역학조사에 투입돼 추적조사, 데이터 관리, 보건교육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 결과, 지난 6월 기준 약 2,750건의 사례추적을 통해 380여 건의 코로나19 감염 사례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네팔 누와꼿 군립병원 책임자인 라이 쿠마르 람 박사는“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의 때에 코이카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며 “네팔에 현대화된 의료시설을 지원해 준 코이카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 코이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준비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표준인 뉴노멀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실천도 필요합니다.

이미 닥친 코로나19의 극복,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감염병의 대처를 위한 우리의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에는 누구도 안전해지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정신의 구현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이슈를 △선진국의 문제 △개도국의 문제로 구분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2020년이 우리에게 일깨운 ‘새 천년’의 시대정신은 ‘모두, 함께’입니다. 그 중심에 ‘신뢰와 연대’가 놓여 있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뉴노멀의 핵심은 코로나19 극복이 어느 한 나라만 해결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자국주의 중심 사고에서 한발 나아가, 글로벌 상생과 조화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극복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코이카는 국제협력을 통해 지금까지 크나큰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K-방역과 코이카의 개발도상국 협력 사례를 통해 얻은 교훈을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을 통해 글로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코이카는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40
2020-10-15 17:44:21
반갑습니다. 저는 전기기술사 학원에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40대 '아재'입니다^^; 저희 학원은 전기기술사 자격증을 공부하는 수강생도 남자분들이 대부분이고, 원장님서부터 행정실에 근무하는 직원과 강사 10명이 모두 남자인, 마치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아주 딱딱하고 건조한 분위기에요.
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이 가장 어른이신데, 두 분다 경상도 출신에 하루에 다섯마디 말씀하셨으면, 그날 아주 많이 말씀하신 것일 만큼 무뚝뚝하시죠. 그리고 원장님은 군에서도 10년 넘게 장기복무 하신 경력도 있으셔서 사무실에서 '군기'를 자주 잡으시기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로 인해 학원도 문을 닫아야했고, 문은 닫았지만 업무는 계속 진행이 되어야하니 학원 직원 전체가 재택근무 체제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재택근무를 하려면 카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업무와 관련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이 카톡을 전혀 해보신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ㅠㅠ 그래서 저를 비롯해 젊은 직원들이 글자 입력서부터 하나하나 깨알같은 도제식 교육에 나서 겨우 단톡방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원장님과 사무국장님께 이모티콘 입력하는 법은 나중에 알려드렸는데, 이 두분이 글쎄 이모티콘 올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시더라구요 ㅋㅋㅋㅋ
급기야 카톡에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에도 손을 대시기 시작하셔서 남자들만 모여있는 전기기술사 학원 단톡방에 ㅋㅋㅋ와 ㅎㅎㅎ가 마구 올라오는
귀여운 '사랑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ㅋㅋㅋㅋ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재택근무 덕분에, 군대 내무반 같던 저희 행정실에 훈풍이 찾아온 셈이죠^^
재택근무가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고, 저희 학원의 수익에도 영향이 있었지만, 분위기 만큼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 되면서, 심적으로는 지치고 짜증도 나고 힘이 들긴하지만 단톡방에서 느낀 소소한 즐거움 덕분에 하루하루 잘 극복해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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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26:01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들이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교류도 적어지고 경제자거인 피해로 인해 지쳐있는 사람들도 많은 현실입니다.
감정을 느끼고 요리를 만들고 소통하는 MAKE에서 정서적으로 메말라있고
지쳐있는 분들을 위해 요리를 이용한 소통요리를 재능기부하고자
MAKE를 필요로 하는 단체나 회사를 찾아봤습니다.
저희 소통요리공간 MAKE를 원하시는 곳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코웨이 서산 3160 사업국과 연천의 꿈자락, 서산봉우리봉사단,
청양의 도담도담육아동아리에서 재능기부를 하였습니다.
서산에 위치한 코웨이 3160 사업국은 힘든 시기에 직원분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사업국장님이 직접 신청해 주셨으며 맛있고 예쁜 고구마빵을
함께 만들고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직원분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간의 소통을 해 주시고 눈물로 무거웠던 마음들도 내려 놓으시고
더불어 저희 MAKE 선생님들도 마음이 따뜻해 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소통의 시간 후 저희에게 감사하다며 꽃다발을 전해주시는데 그것에 또 한번
감동이었으며 그리고 후에 코웨이 사무국에서 많은 피드백의 글들이 저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내용들을 보면 '코로나로 인해 지쳐있는 식구들에게 요리로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주고 짧은 시간 안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라는 글도 있었으며 '잠깐 동안 한번도 열지 않았던 팀원들과 소통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라는 글 등..
여러 가지 따뜻한 말들로 피드백을 해 주셔서 생각지도 못 한 글들에
저희 MAKE 소속 선생님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음이 고우신 분들이 모여 좋은 일 하시는
봉우리봉사단분들과 소통요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구마빵을 다같이 만들고 포스트코로나시대를 맞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힘든 부분들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친한 이들에게 털어 놓고 위로 받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소통의 시간이 지금 가장 필요한 때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에
이런 귀한 시간들을 서로 만들어가고 서로 느낄 수 있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들도 들기도 했습니다.
봉우리봉사단의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후에 이곳에서도 따뜻한 피드백의
글들이 전해졌습니다.
'너무 복잡했던 마음, 위로 받고 싶은 마음, 다잡아 보고 싶은 마음을 강의 내내
채우셨다며 고맙습니다.' 라는 글도 있었으며
'요리하며 치유하는 귀한 시간 만들어 주신 MAKE팀에 감사합니다.'
라는 글도 피드백 해 주셔서 행복함을 느끼고 이 일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우리의 재능을 통해 코로나로 지쳐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수업들이었는데, 그 분들의 소통하는
모습들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더불어 MAKE 소속인 저희들도
같이 하나가 되어 소통하고 마음에 따뜻함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6
2020-10-15 17:24:13
양수경 봉사자는 올해 70세이며, 춘천 시내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의 산골 사북면 오탄리에 살고 계신다.
평상시 외곽에 살면서도 봉사 활동에 관심이 있어 가끔 향우회 봉사단에서 연락이 오면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가하여 김장김치봉사, 연탄배달
봉사, 배식봉사 등 1년에 3~4회 당일치기 봉사에 참가했고 그 외 혼자서 봉사하는 일은 쉽지 않아, 집 앞 밭에서 수확한 채소, 고구마, 산채 그리고 정원에 있는 머루, 다래를 시내 불우노인에게 나눠 주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3월초 시내에 나왔다가 약국 앞에 마스크를 사기위해 주로 노인 분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뉴스에서 줄을 서도 마스크가 떨어져 못사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시절 양재 일을 했고 집에 재봉틀도 있어 마스크재료만 있으면 손수 만들어 어르신들께 나누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봉사 센터를 찾아오셨다고 했다.
마침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불우시설과 노약자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봉사자와 함께 마스크제작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센터방문을 감사드리면서 재료가 준비되면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더니 거리가 있으니 직접 오시겠다고 했고 준비된 날에 오셔서 내가 자주 못나오니 500개 분량을 달라고 해서 가져 가셨다.
이 수량은 센터에서 만드는 봉사자 수준으로 비교하면 250시간 분량의 많은 양이다.
그런데 1주일 만에 만들어 오셔서 깜작 놀라 같이 만드는 봉사자가 있냐고 여쭸더니 산속에 영감 말고 누가 있겠냐며 또 500장분을 가져가 1주일도 안되어 만들어오셨다.
나는 놀라고 믿기지 않아, 잠도 못주시면서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니냐고 걱정 섞어 물었더니, 마스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은 언제 잤는지 기억조차 없고 집안일은 아예 손 놓았음은 물론 영감 밥도 알아서 해결하라 하면서 재봉틀에서 살다시피 해 다 만들었더니 이젠 손도, 허리도 아파 더는 못 만들겠다면서도 아직도 만들게 많이 남았냐? 시며 걱정해주시는 모습에서 눈시울에 뜨거움 전해지며 천사의 모습을 보는 듯 느껴졌다.
‘예! 목표량 다 채웠고 남은 재료만 만들면 끝나니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양수경 봉사자분 덕분에 500명은 줄 안서도 됩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또 봉사기회 있으면 연락 주라면서 애써 웃으면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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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13:28
안녕하세요. 대구에 살고있는 쌍둥이네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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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7:06:18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구에 사는 쌍둥이네입니다.

올해 초, 갑자기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민폐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구하느라 난리였지만
마스크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기에 마스크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미싱을 사용할 줄 알기에 마스크를 만들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구할수도, 만들수도 없으신 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나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쌍둥이 두딸과 조카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가장 힘든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다문화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쯤. 나라에서 집집마다 4개씩의 마스크를 배부해주긴 했지만
나라에 인적신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다문화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두 딸아이와 조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단을 제단하고, 다림질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대구가 전국적으로 민폐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대구에 있는 중학생들은 이리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상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렸지만 서투른 영상에 조회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의 어려움을 다같이 극복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동참하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로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교육하고 길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날 몇일을 그렇게 만들어서 마스크 200여장을 3회에 걸쳐서 다문화센터와 중고장터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무료로 배부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그 힘겨움이 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할 사람들을 블로그로 모아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나누어드렸더니
대구가 제일 심각한 상황이니 마스크를 대구로 보내고 싶으시다고
완성된 마스크를 소정의 물품들과 함께 다시 저에게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정말 이게 공동체이고 국가구나...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공동체임을 느껴서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마스크 재료를 받으신 분 중에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가져다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NC구단의 시구까지 하게 된 분도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이 수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세지도 주셨습니다.
또 저의 지인 중에 한 분은 제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마스크를 만드는 걸 알고, 마스크안에 넣는 필터를 구입하라고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을 내어놓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것이 진정 따뜻한 공동체 아닐까요?
위기의 상황에 나만,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위로를 전하는 이런 국민성이야 말로
코로나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백신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동참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는 정말 이 사회의 희망이고 기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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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16:59:23
저는 요양병원에 요양보호사로 주야간 근무를 한 지 4년이 다되어가는 올해 마흔 다섯살 슈퍼우먼 엄마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동은 3층 치매어르신들이 42분이 입원해있고 4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주야간으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올해 봄부터 시작된 " 코로나 19"는 타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에도 감염소식이 들린 이후로 보호자님들과 면회도 금지되었고 외부인들도
출입이 철저하게 안되어 어르신들의 얼굴에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자녀분들과 전화통화로 마음을 달래면서 눈물짓는 모습에
작은 위로라도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트롯트 노래라도 들려드리고 나면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 뚱띠야 ~ 내 딸래미하면 안되겠나? "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특징을 콕 집어서 저처럼 둥글둥글 살이 찐 사람에게는
뚱띠라고 부르고 날씬한 요양보호사에게는 "빼빼" 야 ~ 이렇게 부르고 머리가 단발머리인 보호사에게는 " 단발아~"
최근에 요양보호사가 새로 들어왔는데 저처럼 넉넉한 맏며느리처럼 통실한 사람이 들어오니 " 아이고, 뚱띠야 ~ 니 동생이 왔는갑다.
" 어르신, 뚱띠라는 말보다는 박여사나 , 김여사나 이여사라고 불러주면 더 좋을것 같은데요. "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급하신 용무나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필요할때 " 띵동" 하고 벨을 눌러주시면 되는데 유난히도 자주 벨을 누르시는 어르신이 있었는데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하면
" 뚱띠야 ~ 내가 쓰던 컵이 없어졌다. 옆에 있는 할매가 가져간거 아이가? "
우리 병동에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치매어르신들이 많아서 금방 기억하다가 생각이 나지않고 같이 쓰던 입원한 다른 할머니에게
의심하기도 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면 그 컵을 몰래 가방에 숨겨놓고 없어졌다고 발을 동동구르고 아무 죄도 없는 옆에 할머니가 의심받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저 할매가 노망이 들어갖고 , 내 몰래 , 내가 좋아하는 컵을 가져가서 내가 물도 한잔 제대로 못 마신다이가?
세상만사 , 이리도 야박할 때가 어디있노? 뚱띠야 ~ 내 말 좀 들어봐라. ~"
" 어르신, 진정하시고요, 그 컵이 날개달린것도 아니고, 하늘로 솟아난것도 아니고 천천히 찾아보면 나올겁니다.
" 뚱띠야 ~ 흐으흑 울먹인 목소리로 내 막내딸이 사준건데, 우째 이런일이 일어나노 ?"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한 일로 치매어르신들은 너무 크게 상심하고, 분노하며 , 감정조절이 잘 안되어서
옆에 환자에게도 의심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되서 늘 긴장의 연속이었지요.

저번에는 5월 8일날 어버이날이 되었는데 예전같았으면 보호자님들이 와서 아드님, 따님, 며느님, 손자, 손녀들이 와서
웃음꽃이 한참 피울 시간이었는데 이번에는 미리 예약하신 분들만 " 코로나 19"로 투명칸막이를 하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끼고 면회시간 주어진 시간은 단 5분동안 만남이 허락되었지요.
그 5분이 너무나도 짧아서 면회시간이 끝나고 나니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 참말로 야박한 세상이여. 큰아들하고, 큰며느리한테 억수로 미안하네...."
" 코로나인지 코르나인지, 우리네 인생살이 팍팍하게 만드네....."
작년 같았으면 어버이날에는 우리 요양보호사들과 간호사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노래도 불러드리고 춤도 추고 마음의 힐링을 위한
시간들도 만들어 드렸는데 올해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어 어르신들의 마음이 더 적적한지도 모르겠다.
나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김할머니는 내가 쉬는시간에는 나를 부르셔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구구절절이도 이야기 해주신다.
보호자님들의 면회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우리 요양보호사들의 어르신들의 딸이 되어 허전한 마음을 달래드리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 라떼는 말이야 ~" 하면서 시작되는 레파토리들.
김할머니는 평생 젊은 시절부터 40년넘게 시장에서 생선파는 할머니로 사시다가 서서히 진행되는 치매로 인해 장사를 도저히
할 수 없어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요즘들어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기회가 많아졌다.
" 뚱띠야 ~ 내가 젊은 시절 30대 초반부터 일찍 과부가 되서 먹고 살아야 해서 생선장사로 시작했는데 내 나이가 팔순이 다 되도록
생선비린내 풀풀 나는 시장에서 참도미,민어, 참조기.... 생선들을 하루에도 50마리인지, 100마리인지 생선손질을 하루종일 하고나면
생선냄새가 진동하도록 생선을 팔았다이가.....나중에는 돈에서도 생선냄새가 날 정도였지. 명절전이면 우리가게에 단골손님이 줄을 서서
생선을 사갔어. 할매집 생선이 제일좋타고, 칭찬도 많이 들었제. 내가 이래뵈도 생선박사여...."
하면서 또렷한 기억력으로 이야기하실때면 " 어.... 치매어르신이 맞나? 하면서도 하룻밤 자고 내일이 되면 어제 내가 우리 뚱띠한테
무슨 이야기 했는지 기억이 없네. 내가 생선장사하러 나가야 되는데, 보내주면 안되겠나?"
"어제 저한테 예전에 시장에서 생선장사 하실때 이야기해주셨는데 기억이 안 나세요? "
" 내가 언제 그래 이야기했노? 뚱띠야 ~ 내가 이래 건강한데, 여기 있을때가 아니다. 내 좀 보내주라. 뚱띠야~
" 제 마음대로 퇴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하고 보호자님하고도 의논해야 됩니더. "
" 오늘 내 기분이 안좋은데 트롯트 한자락 해주라 ~~"
" 그러면 자장가처럼 조용조용히 불러드릴께요.
" 청춘을 돌려다오" 노래가 억수로 듣고 싶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얼굴이 쭈글쭈글한 할머니얼굴인데 나도 청춘이 있었다이가..."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한 그 사랑도 태산같은데 가는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하고 잔잔히 음을 띄워서 노래를 한자락 불러드리니 우리 치매어르신 김할머니의 눈가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울음을 삼킨채 울먹이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족향한 그리움을 더욱 커졌고 날이 갈수록 기억의 테이프는 희미해져 가는
인생에 대한 서글픔이고 다가올 세월에 대한 두려움이 팔순이 훌쩍넘은 김할머니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 뚱띠야 ~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여기 요양병원에서 내 딸래미 하면 안 되겠나? 고맙데이. 죽어서도 그 고마움 못 잊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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